헌법재판소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10일 오전 11시21분, 서울 종로구 안국역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선 “아…” 하는 한숨이, 다른 편에선 “와!” 하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좌절의 한숨은 “헌재로 가자”는 분노로 발전했고 이 과정에서 2명이 숨졌다.
안국역에서 남쪽으로 낙원악기상가까지 채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집회 참가자들은 선고 직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 중년 여성이 “선고했대요, 파면이래!”라고 울부짖으며 들고 있던 태극기로 무릎을 내려쳤다.
차모(69)씨는 넋 나간 표정으로 흔들던 태극기를 멈췄다. “당연히 각하될 줄 알았다. 언론 검찰 법원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 석 달 동안 언론이 박 대통령을 몹쓸 놈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헐뜯으면 성인군자라도 흠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50대 후반이라고 밝힌 정지수씨는 멍하게 있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엔 태극기를 들었고, 몸에도 초대형 태극기를 감고 있었다. 그는 처절하게 외쳤다. “박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정씨가 울부짖자 여기저기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연단에서 누군가는 “박 대통령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예수님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30여분이 지난 뒤 몇 명의 참가자들이 “헌재로 쳐들어가자”라고 외쳤다. 적의(敵意)가 여기저기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가 연단에서 “헌재로 돌격!”이라고 외쳤다. 헌재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경찰버스에 어른 키만 한 깃발을 든 중년 남성이 올라갔고, 이어 20여명이 따라 올라갔다.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어 당기고, 경찰을 밀쳐 경비벽을 무너뜨렸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해 대응했다.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정모(65)씨가 경찰버스에 몰래 들어가 운전하다가 소음관리차량을 추돌해 차량에 설치돼 있던 스피커를 떨어뜨려 김모(72)씨를 숨지게 했다. 안국역 출입구 근처에서는 또 다른 김모(66)씨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4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2명은 위중한 상태다. 취재진 20여명이 집회 참가자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기자협회는 “경찰은 기자들이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한 취재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경찰은 정씨 등 7명을 집회 중 불법 행위자로 검거했다.
같은 시각,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집회를 열었던 안국역 1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 도로는 축제의 장이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선고 발표가 ‘그러나’와 ‘그런데’를 반복하며 반전을 거듭할 때마다 집회 참가자의 표정에선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가며 드러났지만, 결국 이 권한대행이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짓자 참가자들은 “이겼다”를 외치며 서로 얼싸안았다. 울음을 터뜨리거나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며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흘러나왔다.
오전 11시50분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율곡로를 따라 행진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나온 직장인도 행진 대열에 합류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와대 100m 앞인 효자동치안센터에 도착하자 50대 여성 3명이 서로 껴안으면서 “우리가 해냈어”라고 말했다.
윤성민 이가현 임주언 기자
woody@kmib.co.kr
탄핵 후 헌재 밖에선… 흥분한 친박단체 과격 시위
입력 2017-03-10 17:30 수정 2017-03-11 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