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법 위배행위, 파면 필요할 정도로 중대” 판단

입력 2017-03-11 05:00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소식을 전하는 대형 전광판 너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그리고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이병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에는 13년 전 헌법재판소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 당시 세운 기준이 적용됐다. 대통령이 소추사유에 적시된 법 위반행위를 했는지, 인정된 법 위반행위는 파면이 필요할 정도로 중대한지 여부다. 10일 박 전 대통령의 법 위반행위를 구체적으로 살핀 헌재는 2004년 탄핵심판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8명의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의 일련의 행위를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로 최종 판단했다.

많이 다른 朴과 盧 탄핵심판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대에 서게 된 사유부터 노 전 대통령과 달랐다. 총 13가지로 이뤄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는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과 뇌물수수·강요 등 권력형 비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인(私人)인 최순실씨에게 공무상 비밀 문건을 전달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해 최씨의 사익 추구를 도왔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한 정치적 표현의 중립의무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던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단순 피청구인 신분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강요 등 혐의로 입건된 상태였다는 점도 다르다.

이런 차이는 헌재의 심판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63일간 7차례 변론이 이뤄졌다. 출석한 증인의 수는 4명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선고까지 92일이 걸렸고, 변론도 17차례 이어졌다. 증인도 26명으로 월등히 많다. 탄핵소추 사유 항목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사실관계 인정 여부를 두고도 공방이 훨씬 치열했다는 의미다.

결정 가른 법 위반 ‘중대성’ 판단

두 대통령 모두 법 위반 행위가 있었다는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법 위반 정도에 관한 결론은 달랐다. 헌재는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지지를 언급한 노 전 대통령의 행위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소극적·수동적·부수적 행위”로 봤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중대한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헌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하며 대통령 파면의 기준을 제시했다.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과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의 유무가 기준이었다. 대통령이라는 권한과 지위를 남용해 뇌물수수, 공금횡령 등 부정부패를 하는 경우,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 부정선거 운동을 하는 경우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으며 다소 추상적인 파면사유를 구체화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헌재가 제시한 기준을 넘어서는 첫 사례가 됐다. 헌재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 ‘2017. 3. 10. 11:21’이란 구체적 선고날짜와 시각을 적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 낭독을 끝낸 시점을 기록한 것이다. 그간 헌재 결정문에 분 단위까지 명시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파면 시각을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한 차원이다. 탄핵 결정 시간에 따른 법률적 논란이나 분쟁 여지를 차단하고, 선고 도중 국가 변란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최고책임자의 권한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도 담겼다고 한다.

글=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