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자주색 법복(法服)을 갖춘 8인의 헌법재판관이 60㎝ 높이 심판대 위에 섰다.
“재판관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외침에 대심판정 내 150여명이 일제히 기립했다가 앉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 대심판정은 그 순간 봉쇄됐다. 어떤 소리도 더는 새어들지 않았다.
“지금부터 2016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입을 열었다. 방청석에서 볼 때 이 대행 오른쪽으로 이진성 안창호 서기석 재판관이, 왼쪽으로 김이수 김창종 강일원 조용호 재판관이 차례로 착석했다. 8인의 현자(賢者)는 무표정했다. 서 재판관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 측 대리인 이동흡 변호사는 긴장된 얼굴이었다. 이 변호사와 마주한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행은 오전 11시8분 “탄핵소추 가결 절차에 어떠한 위법이나 흠결도 없다”고 선언했다. 이어 공무원 임면권 남용·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에 관한 생명권 보호·직책성실 의무 위반에 대해선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이 대행은 안경을 모두 세 번 고쳐 썼다. 대심판정은 조용해졌다.
이후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 기소)씨가 거론되자 선고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 대행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피청구인(박근혜)의 최서원(최순실)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에 관해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의 입에서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자유 침해’ ‘공무원의 비밀엄수 의무 위배’ 등의 말이 쏟아지자 피청구인 측 대리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았다.
오전 11시21분, 이 대행은 주문을 선고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통령 측은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아무도 고함치지 않았다. 변론 과정에서 ‘법정 모독’ 논란을 일으켰던 김평우 변호사는 심판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재판관으로서 마지막 선고를 마친 이 대행의 맞은편 벽면에는 희망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작품 ‘10개의 빛의 계단’(하동철 작, 280×560㎝)이 걸려 있었다.
796대 1의 방청권 추첨 경쟁률을 통과한 시민 24명은 역사적 순간의 목격자가 됐다. 경남 거창대성고 교사 채영현(59)씨는 대심판정을 나서며 “국민 대다수가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채씨는 “이 대행이 최순실씨 관련 얘기를 할 때는 비장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정해진 것 같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혜정(28·여)씨는 “많이 떨리고 설레었다”며 “모두가 원하던 결과가 나온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권성동 위원장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사건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위대한 재판부라 기대했었다”며 “참담하고 강력한 유감을 전한다”고 했다.
양민철 나성원 이경원 기자 listen@kmib.co.kr
반전의 21분… 숨이 막혔다
입력 2017-03-10 17:30 수정 2017-03-10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