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조기 대선 체제가 시작되면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반도 외교안보 현안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국은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위안부 소녀상 문제를 두고선 일본과 대립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국과의 공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차기 정부가 공식 출범하는 향후 60일간은 외교안보 사안의 안정적인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대선 기간 중 외교안보 사안들이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드 배치나 북한 문제 등에서 보수·진보 진영 간 극단적인 대립으로 파열음이 커질수록 이를 수습할 차기 정부의 부담만 늘어난다는 취지다. 사안에 따라 초당적인 대처도 요구된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10일 “한국은 주변국에 비해 국력이 약한데도 안보 이슈에서 지나치게 갈등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선 기간 중) 일반 국민의 여론 수렴을 위해 정치권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야권에 유력 대선 후보가 집중된 상황에서 전임 정부의 주요 정책이 갈등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대선 후보나 정당 간 다툼을 넘어 동맹국과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대선 후보 간 토론회 이후 향후 대북정책이 급격히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면 한·미 갈등이 커질 수 있다”며 “정치권이 대선 기간 안보 문제에서만큼은 따로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대선 후보 단계에서부터 주변국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유력 후보 측의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은 미국 등 동맹국과 접촉해 혹시 모를 이견을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국내 여론에만 민감하게 반응해 국제관계의 현실을 외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되 ‘무조건 갈아엎자’는 식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박근혜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해 대일(對日) 외교에 실패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일 위안부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현 상황에서 위안부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를 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정권을 잡아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일본이 재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했다.
외교안보 이슈의 복잡한 측면을 도외시한 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사드 문제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을 택한다는 관점으로 문제를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며 “북한 문제나 경제 문제 등을 감안하면 한·미동맹을 잘 관리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정부 준비 단계에 들어선 만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올 들어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감안할 때 안정적인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황교안 권한대행은 관리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정책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 같은 구체적 현안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드의 경우 일부 장비가 들어와 배치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사드는 이 정도 선에서 관리하며 중국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며 “권한대행 체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또 다른 불씨를 남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주한 일본대사 최다 공백 기록을 경신 중인 한·일 관계 역시 상황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황 권한대행은 (한·일 관계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현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외교정책 수준에서 꽤 높은 레벨의 해법이 필요하다. 권한대행 체제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글=김현길 조성은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난제 사드·북핵, 섣부른 해법 대신 관리를”
입력 2017-03-11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