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된 헌법재판소 안팎에서는 발언 그대로 역사에 기록될 만한 말의 향연이 펼쳐졌다. 귀를 의심케 하는 막말도 있었고 탄식을 자아내는 황당한 궤변도 많았다. 때로는 울림이 큰 증언들이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답답한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는 ‘사이다’ 발언들도 회자됐다.
“재판장님 화장실 좀…”
1월 16일 제5차 변론기일에 증인 출석한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의 증언 태도는 좋지 못했다. 대다수 질문에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를 반복하던 그는 오전 신문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 박한철 헌재소장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일 행적이 질문되자 최씨는 “어제오늘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돈봉투가 더 큰 기밀 같다”
1월 12일 제4차 변론기일에서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최씨의 청와대 출입 여부를 한사코 증언 거부하는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을 향해 “그분의 청와대 출입이 국가 기밀이냐”고 물었다. 이 행정관은 정작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옷값 명목으로 돈 심부름을 시킨 정황에 대해서는 봉투의 색깔과 질감까지 자세히 언급했었다. 이에 강 재판관은 “거꾸로 제 생각은 대통령이 돈봉투를 외부에 전달한 게 더 큰 기밀인 것 같다”고 말했고, 방청석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느 정권이든 비선… 뭐가 잘못”
1월 19일 제7차 변론기일에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출석했다. 그는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본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개선돼 나아지게 한다면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정권이든 편안히 자문할 사람은 늘 존재한다”며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박 대통령의 차명폰 사용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공무원 첫째 의무, 모르고 있었다”
정 전 비서관과 같은 날 오전에는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증언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을 직접 언급하며 산하 단체 임원직으로 보임하라 지시했고, 그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이 지시가 공무원을 해임하는 것이 아니라 요직으로의 승진인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진성 재판관이 “공무원의 첫째 의무가 뭐냐. 법령 준수임은 아느냐”고 직접 신문하자 그는 “모르고 있었다”고 답했다.
“3월 13일까지는 선고돼야”
박 전 소장은 자신의 퇴임을 앞둔 1월 25일 제9차 변론기일을 진행하며 “헌법재판소 구성에 더 이상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 13일까지는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할 것”이라고 모두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실제로 실현됐다. 자신에 이어 이정미 재판관까지 퇴임하면 심판 결과에 왜곡이 우려된다는 취지였다. 박 대통령 측이 헌재와 국회 측의 교감 의혹을 제기하자 박 소장은 법정 모독이라며 매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국회엔 일본도, 우리는 부엌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인 이중환 변호사는 지난달 1일 제10차 변론기일에서 “청구인(국회)에게는 예리한 일본도를 주고, 피청구인(박 대통령)에게는 둔한 부엌칼을 주는 것”이라며 헌재를 향해 발언했다. 헌재가 일방적으로 작성된 검찰의 수사기록에만 의존한 채 대통령 측의 증인 신청은 배척하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박 대통령 측은 이날 국정농단과 탄핵정국 사태의 발단을 최씨와 고영태씨의 불륜관계에서 찾기도 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최순실 “화장실 좀…” “어제오늘 일도 기억 안 나는데…”
입력 2017-03-10 18:02 수정 2017-03-10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