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궁원] 핵융합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입력 2017-03-10 18:59

공상과학 영화에서 미래는 첨단화된 과학기술이 인류를 위협하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대다수 SF영화의 플롯은 인간의 이기심에 그릇된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 인류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 초래되고, 휴머니즘을 통한 갈등의 해결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인류 미래를 구원하는 것은 아마도 휴머니즘이 맞을 것이다. 다만 휴머니즘이 전제된 과학기술이 인류 미래의 희망이 되고, 현재도 많은 과학자가 인류구원 프로젝트에 밤낮없이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 영화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과학자들의 대표적인 인류구원 프로젝트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7개 회원국이 인공 태양이라 불리는 핵융합실험로를 건설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개발 사업이다. ITER은 인류 공동의 과제로 꼽히는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핵융합 발전 상용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사상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다. 회원국들의 목표는 각국의 자본과 그동안 발전시켜 온 핵융합 기술을 한데 모아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ITER의 역사는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만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시대의 두 거물은 핵융합의 평화적 개발을 위해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후 장기간의 개념 설계와 공학 설계 과정을 거쳐 2006년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과 더불어 후발주자인 한국 중국 인도까지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과학기술 국제협력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 각국은 왜 천문학적인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여 핵융합에너지 개발에 몰두하는 것일까. 바로 핵융합에너지는 연료가 무한대에 가깝고, 대기오염이나 방사능폐기물 등의 걱정이 없는 꿈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가 개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인 핵융합에너지는 인류의 미래와 직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것은, 이러한 특급 프로젝트를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핵융합 연구의 후발주자였지만 성공적인 초전도핵융합장치 KSTAR의 건설과 운영을 통해 세계적 위상을 얻었다. 이는 국내 연구자들의 ITER 국제기구 핵심 보직 진출과 국내 산업체의 ITER 참여 확대로 이어졌으며, 우리나라가 ITER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ITER을 거쳐 실증로를 통한 전기 생산 실증까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시대로 가는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인류가 염원하는 핵융합에너지 시대를 열기 위한 마라톤 같은 긴 여정에서 ITER의 성공적 건설은 그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거대과학 프로젝트인 만큼 앞으로도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ITER에 참여하고 있는 핵융합 연구자들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ITER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핵융합에너지에 대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언제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가”이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핵융합 연구자들은 “후손을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핵융합에너지 개발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휴머니즘을 가진 과학자들의 역할일 것이다.

남궁원 ITER 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