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에 무한도전 ‘10초 출연’… 갈 길 멀지만 하나님이 인도해주실 것”

입력 2017-03-10 00:03
배우 남정우가 최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영화 ‘사일런스’에 출연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2015년 2월 대만에서 진행된 영화 ‘사일런스’ 촬영 현장에서 분장한 배우 남정우. 오른쪽 사진은 2015년 1월 영화 배역을 따내기 위해 촬영 현장 근처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남정우 제공
‘10초를 위해 인생을 건 남자’ ‘포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 무명 배우’. 11년차 배우 남정우(35)의 수식어다. 인터넷 포털의 연관 검색어엔 ‘침묵’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지’가 등장한다. 17세기 일본에서 선교하다 배교한 포르투갈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에 출연해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최근 만난 남정우는 “가족들이 영화를 보러 간다기에 어디에 나오는지 설명해주긴 했는데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상영시간 159분 중 출연 시간은 대략 10초. 이름도 없는 마을주민 50여명 중 한 명인데다 얼굴마저 거무스름하게 분장해 가족들도 찾기 힘들 것이라 했지만 웃음소리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는 2년 동안 대학 10곳의 문턱에서 미끄러진 끝에 서울 감리교신학대에 입학했다. “고교시절부터 배우를 꿈꾸며 연극영화과 입학을 자신했지만 돌아오는 건 ‘낙방’뿐이었습니다. ‘합격’을 허락한 곳은 감신대가 유일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곳에서 극단 ‘창조극회’와 연극 ‘침묵’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2001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극단에 들어간 그는 그해 말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각색한 연극 ‘침묵’에서 ‘덕칠이(원작의 기치지로)’ 역을 맡았다. 기치지로는 신앙이 흔들리며 배교와 회개를 반복하는 인물이다. 무대 위에서 땀 흘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배우가 될 것을 다짐했다.

졸업 후 크고 작은 무대에 서던 남정우는 2012년 스콜세지 감독이 ‘침묵’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화제작사에 ‘시체 역이라도 좋으니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1년 뒤엔 일본 도쿄에서의 공연 출연료 전액을 털어 뉴욕 행 항공권을 샀다. 팬카페에서 주소를 알아내 제작사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펜을 들었다. 기치지로 역을 맡았던 대학시절 사진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열정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역시 소득은 없었다. 2015년 1월 다시 대만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장을 찾아 낸 그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엔 ‘배우 바우(남정우의 영어이름)가 스콜세지 감독을 찾아 서울에서 뉴욕을 거쳐 대만까지 왔다’고 적혀 있었다.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때 한 대만 스태프가 단역 배우를 모집하는 회사를 알려줬다. 한 걸음에 달려간 남정우는 수년을 연습해왔던 ‘기치지로’ 역을 연기했다. 그는 “도쿄 공연 때 기치지로 역 대사를 17세기 규슈 지역 사투리로 녹음해 들으며 연습했는데 2년 만에 빛을 봤다”고 회상했다.

남정우가 영화에 등장하는 건 단 두 장면. 하지만 그는 “‘이름 없는 마을주민’이 아닌 ‘기치지로’ 역에 임하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했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며 ‘무한 용기’ ‘희망’이란 이름으로 공감을 얻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추억을 ‘사일런스’와 함께한 그의 다음 도전이 궁금했다. “촬영 현장에서 작품의 숨결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때 한반도의 기독교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 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배우로서 갈 길이 멀고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묵묵히 걷다보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상상도 못했던 퍼즐 조각을 맞춰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절대 침묵하고 계시지 않을 거예요.(웃음)”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