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 인간의 믿음은 위기를 맞는다. 성경의 욥에서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자까지 고통 앞에 선 인간에게 신의 침묵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당신은 어디에 계시는가.’ 영화 ‘사일런스’의 로드리게스 신부 역시 검푸른 바다에서 수형을 당하는 신도의 순교를 목격하며 신의 침묵에 비애를 느낀다.
1630년대, 일본에 선교를 갔던 포르투갈 신부 페레이라(리암 니슨)가 박해에 못 이겨 배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제자였던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르페 신부는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까지 동행할 안내자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를 어렵게 구하지만 그의 비굴한 모습은 불안감을 준다.
미국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일본의 대표적 현대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원작 ‘침묵’을 읽고 연출을 결심한 것은 29년 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개봉으로 많은 논란이 생긴 후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스콜세지는 여전히 절대적 믿음과 분명한 계시보다는 인간의 불완전하고 혼란스런 모습에 관심을 둔다. 혼란함 가운데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과 그와 함께 드러나는 신의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스콜세지 감독이 주의를 기울이는 인간은 기치지로와 같은 유형이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순수하게 신앙을 지켜가는 일본인의 모습에 감동하고 힘을 얻지만 배교와 회심을 반복하는 기치지로의 연약한 믿음을 보면서는 12제자 중 한 명인 유다를 떠올린다.
박해가 거듭되고 신도들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드리게스 신부 역시 믿음의 시련을 맞고 경멸하던 기치지로와 다를 바 없는 배교를 저지른다. 베드로처럼 새벽닭이 울기 직전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성상을 발로 밟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한다. 그가 궁금해 하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를 자기 모습 속에서 발견한다.
역설적으로 믿음의 행위가 철저히 배제된 상황, 끊임없이 배교를 증명해야 하는 박해의 상황, 모든 인간적 의지와 노력을 포기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로드리게스 신부는 침묵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모든 것을 내려놨을 때 그토록 고대하던 신이 고통 중에 항상 함께했음을 깨닫는다.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와 이어지는 로드리게스 신부의 행보는 500년 전 서양사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16세기는 종교개혁의 시기였다. 천동설이 무너졌고 미신적이고 특권적인 교회의 모습을 부정하고 과학과 이성의 시대가 시작된 시기였다. 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세계관이 변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시기였다. 배교 후 페레이라 신부는 서양의 종교 대신 과학기술을 전하기 시작한다. 무지와 가난에 고통 받는 하나님의 자녀에겐 지식의 대중화와 과학적 지식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신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믿음이냐 과학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과 지식이 믿음의 눈에 분별력을 더했다. 인류의 역사는 더 이상 서양 신부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이끌었다.
임세은 <영화평론가>
[임세은의 씨네-레마] 침묵 속 음성, 고통 가운데 믿음
입력 2017-03-11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