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로 발령받아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등을 담당했던 허종욱(48·사진) 수사관이 지난 7일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수상했다. 법조계 수상자로는 허 수사관이 유일했다. 법조 권력의 만연한 부패상을 파헤쳐 제도적인 개선책이 마련되게 한 공로가 인정됐다.
9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사무실에서 허 수사관을 만났다.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에 허 수사관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 고사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언급하며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모두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인데 혼자 받아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알파고를 맞는 이세돌의 심정
허 수사관은 대검찰청에 있었던 2년6개월을 제외하곤 수사관 경력 23년의 대부분을 서울중앙지검에서 보냈다. 지난해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은 허 수사관이 여태 맡은 사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최근의 사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사 대상이 거물급 전관 변호사 등 법률 지식이 해박한 법조인들이었다. 상대는 허 수사관이 무슨 질문을 할지, 질문의 의도는 무엇인지 등을 훤히 알고 있었다. 허 수사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알파고를 맞는 이세돌의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상대는 질문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응을 했다. 그래서 힘들었다”며 “조사 때마다 고비였고, 바둑을 놓을 때처럼 한 수 포석을 더 깔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객관적 증거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현장의 조그만 메모도 놓치지 않으려 힘썼다. 쓰레기통 뒤지는 건 기본이었다. 그는 “객관적 증거는 왜곡할 수 없기 때문에 증거 찾기에 주력했다”며 “법조비리 관련자들은 모두 1심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열심히 확보한 증거가 토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이 바로 선 대한민국
법조비리 수사를 하기 불과 1년 전 허 수사관은 조사부에 있으면서 분양사기를 당한 80대 노인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그 노인은 법적 지식이 전혀 없었고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이를 잘 설명하지도 못했다. 그 사이 사기 친 상대는 같은 내용으로 두 번이나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법조비리 사건까지 마친 지금, 두 사건 사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허 수사관은 두 사건을 통해 느낀 간극이 크다고 했다. 법적 지식이 없는 피해자는 법 앞에서도 피해를 봤다. 반면 법을 잘 아는 피의자는 법 앞에서 위축됨이 없었다. 그가 맡은 분양대금 사건의 피의자는 결국 기소됐다. 피해자 노인 역시 피의자로부터 분양대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허 수사관은 사무실까지 찾아와 “고맙습니다”고 했던 노인의 마지막 인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법조비리 사건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그가 “국민 관점에 맞춰 법조 분야 정의를 수립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답한 데는 이런 경험이 작용한 듯했다. 허 수사관이 지나가듯 보여준 공적 문서에는 ‘기본이 바로 선 대한민국’이란 말이 굵게 적혀 있었다.
글=황인호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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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수사관 “국민 관점서 정의 세우고 싶었다”
입력 2017-03-09 21:10 수정 2017-03-10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