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경원] 심판의 아침, 승복의 날

입력 2017-03-09 17:40 수정 2017-03-09 21:27

헌법재판소가 92일의 심리 끝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10일 선고한다. 8인의 현자는 어떠한 예단과 편견 없이 대공지정(大公至正)의 자세로 국가적 중대사를 심판했다고 자부했다. 이번 사건 선고 자체로 ‘아무리 강한 국가권력의 소유자라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치국가 원리가 재확인됐다. 역사에 남을 결연한 결정문을 어서 읽어보고 싶다.

대통령 탄핵심판 전 과정을 취재했지만 결론을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국가의 권력자들이 어떠한 인식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관은 수감 중인 상태로 헌재 증인석에 앉아 “최순실씨가 밖으로 등장하며 일이 꼬였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인선 정보를 최씨에게 미리 유출해준 이유를 질문받자 그는 “조용히 도와주는 이에 대한 배려”라며 웃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한밤중에도 최씨의 전화를 받으면 강남 길거리로 달려가 귀를 기울였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공무원의 첫째 의무가 뭐냐, 법령 준수임은 아느냐”고 묻는 재판관에게 “모르고 있었다”고 답했다. 헌재에 불려나온 공직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이유를 알지 못했고, 다만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제 입으로 말했다. 망신과 위증이 둘 다 싫었는지 잠적한 이들도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이자 탄핵심판의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은 끝내 헌재에 나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날처럼 본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헌정 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은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를 거부하더니, 헌재가 “신문을 할 수 있다”고 밝히자 스스로 말할 기회를 내팽개쳤다. 일방적인 서면 답변을 읽은 헌재의 반응은 “변론과 모순된다. 대리인들이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받은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촛불이 종북 세력의 사주를 받았다고 비난했다. 심판의 날이 가까워지자 청구인 측이 아닌 헌재와 싸웠다.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심판정 밖에서 “8인 체제 결정은 위헌”이라 떠들었고, 심판정 안에서는 재판관들에게 등을 돌린 채 변론했다. 선고 이전에 불복을 말하는 상황에 대해 법조계는 난센스라 했다. 최고 수준이어야 할 헌법재판을 채운 것이 법리가 아닌 불륜 논란이었다고 한탄하는 이도 있었다.

겨우내 대심판정 방청석에 탄식이 울리고 청사 경비인력들이 추위에 몸을 떨었다. 헌재 정문을 나서면 두 개의 나라가 있었다.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출구에는 재판관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재판관을 칭송하던 무수한 탄원의 절반은 오늘 정오를 기해 저주로 변할지도 모른다.

지난 3개월간 헌재를 드나들며 이 사태 자체가 비극임을 기자는 알았다. 국정농단과 탄핵정국의 수개월 터널 끝에 승패를 논하는 사회에는 아무런 교훈이 없다. 헌재는 어느 한쪽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승리를 선고할 것이다.

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