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차 산업혁명 인력 ‘불공정 하청·열악한 처우’에 신음

입력 2017-03-10 05:02
“주5일 근무는커녕 설날에도 쉬지 못했습니다.” “계약서에 없는 사업 제안서 내용까지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그걸 안 해주면 돈을 안 주겠다고 합니다.”

대기업의 시스템 통합(SI) 사업에 참여한 A씨는 주5일 근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원청업체인 대기업 직원은 하도급업체 소속 A씨에게 일요일 근무는 당연한 듯 얘기한다.

B씨는 지방은행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두 달 위에야 발주 비용을 받았다. 이 은행은 사업 제안서에서 얘기한 걸 지키지 않았다며 결제를 미뤘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한 것은 제안서에는 있었지만 정작 계약서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다. 최근 A씨는 미국의 IT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B씨는 중국 IT 기업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력개발을 강조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개발 등 관련 산업인력은 불공정 하도급 관행과 열악한 근로환경에 신음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개발 프로젝트에 하도급 형태로 참여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지만 관련 규제가 없어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규제기관 역시 기존 건설·제조 등 전통 산업과 달리 제재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문제점을 알고도 개선을 요구하기 힘들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하도급계약서를 제대로 발급하지 않은 카카오, 엔씨소프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등을 부과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9일 “지난해부터 ICT 업체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하도급 실태 조사에 들어갔지만 산업군이 애매해 규정을 적용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실제 카카오는 ICT 기업이지만 하도급계약서를 발급하지 않은 기업은 캐릭터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체였다.

하도급 업체는 불공정행위를 고발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이 때문에 공정위도 하도급 실태조사 당시 카카오 등 대표기업을 특정해 2014년부터 모든 계약서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여기는 시장이 작기 때문에 공정위 등에 고발을 하면 소문이 나서 더 이상 거래할 수 없게 된다”면서 “일주일 동안 3, 4일 집에 못 들어가도 수당을 요구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청업체들이 이 같은 상황을 악용해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얘기한다. 야근수당이나 휴일근무비를 주지 않는 건 기본이다. 발주 비용을 주지 않으려고 본계약을 진행하기 전 하도급 업체들이 원청업체에 내놓는 제안요청서(RFP)로 트집을 잡기도 한다.

B씨는 “RFP는 말 그대로 원청업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하도급 업체들이 제안하는 계획서”라며 “계약서에는 RFP에 있었던 내용이 빠졌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으니까 RFP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며 발주비용 지급을 미뤘다”고 토로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12대 미래 유망 신산업’에 향후 2025년까지 58만500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산업 분야 산업전문인력 6500여명 양성계획을 밝혔고, 일부 대선 주자는 4차 산업혁명 인재 1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공약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열악한 근로환경과 대기업 등의 횡보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IT 인력의 해외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