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류현진 김광현이 없다.” 한국야구의 몰락을 논하면서 몸값 거품, 좁은 스트라이크 존 등의 이유를 대는 것은 어찌보면 지엽적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의 풀뿌리 아마야구가 위태하다는 점이다. 아마야구단은 눈앞의 성적을 위해 어린 학생들에게 변화구 투구를 강요하고 작전수행능력을 주입하고 있다. 이로인해 언제부턴가 김광현이나 류현진처럼 강속구 투수도, 박병호와 같은 거포 유형의 타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의 ‘고척 참사’는 한국야구의 근간인 아마야구의 변질과도 연관이 깊다.
성적지상주의에 기교만 주문
고교 선수들 사이에서 투수는 여전히 인기 포지션이다. 잠재력을 갖춘 유망주들은 많다. 하지만 실적이 있어야 좋은 대학이나 구단에 갈 수 있는 현실에서 각 고교 사령탑들은 이기는 야구에만 치중한다. 이에 따라 투수들은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변화구부터 배운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은 최근 “한국에서는 리틀야구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10개 중 8개는 변화구로 던진다. 당장 경기는 이길지 몰라도 투수를 버리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타자 역시 점수를 내기 위해 강한 스윙보단 일단 배트에 공을 맞춰서 살아나가는 등 작전 수행에 능한 교타자가 선호된다. 내야안타라도 만들기 쉬운 우투좌타가 한때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교야구 관계자는 “프로에서 거포 외인을 주로 영입하는 점도 아마에서 자연스럽게 박병호 스타일보다 이용규 스타일을 주문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유망주의 잦은 혹사
게다가 유망주들은 프로 입단 전 잦은 혹사로 몸이 망가진다.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대개 8강부터 거의 매일 경기를 치른다. 8강 이상 오른 팀의 1,2선발투수들은 연투를 불사한다.
한 고교 야구부 감독은 “1, 2선발투수들이 꾸준히 던지니까 현 위치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3∼5선발들은 계속 등판기회를 잃어 의욕을 상실하고 실력도 정체된다”는 견해를 보였다.
고교야구 투구수 제한은 130개인데 이를 어겨도 별다른 제재가 없어 있으나마나한 조항이 되고 있다. 또다른 야구팀 감독은 “투구수 제한을 80∼90개 이하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주말리그제의 보완을 주문하기도 한다. 매 주말에만 경기가 열리면서 각 고교 팀들은 에이스급인 1,2선발투수만 돌려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야구계에선 “선수들에게 학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주말리그제를 폐지할 순 없지만 운동량을 줄이지 않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교까지는 알루미늄 배트 사용 필요성
2004년 4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18세 이하 청소년 국제대회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도 그해 8월부터 이 지침을 따랐다. 타자들은 반발력이 적은 나무배트를 사용하면서 일단 맞추고 보자는 식의 타격에 익숙해졌다. 어릴적부터 만들어야 할 올바른 타격 폼은 이런 이유로 무너졌다.
일각에서는 서양과 동양 청소년의 파워 차이로 나무배트를 꼭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일본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학생들이 여전히 알루미늄 배트로 타격한다. 야구계 인사는 “장타의 위험에 노출된 일본 고교투수들은 변화구뿐 아니라 강속구 연마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며 “일본 스타 오타니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한 만큼 우리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고척 참사’ 한국야구] (중) ‘성적’이 뭐길래… 날개 꺾이는 ‘유망주’
입력 2017-03-09 18:26 수정 2017-03-10 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