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는 서른 살이 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87년 개헌’이 한국 민주화의 시작이다. 서른 살이라 건강한 줄 착각했지만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법원의 결정에 대한 승복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다. 그런데 ‘불복’ 얘기가 거리낌 없이 나오고, “승복하자”는 애원이 빗발친다. 한국 민주주의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아니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이다. 10일 오전 11시, 한국 민주주의는 시험대에 또다시 오른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는 한국을 거대한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2016년 초겨울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하나의 시민혁명으로 평가된다. 혁명은 제도권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하지만 광장의 외침이 계속될 수는 없다. 반작용으로 등장한 이른바 태극기집회도 심상치 않다. 이 순간 한국 민주화의 두 거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두 김씨는 광장의 외침과 제도권 정치 사이를 줄타기하며 한국 민주화를 이끌었다.
민주화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하던 1985년 5월 23일 서울의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서울 중구 을지로의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했다. 대학생들은 당시로선 엄청난 금기였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따져 물었다. 이들은 “미국은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국민 앞에 정중히 사죄하라”고 외쳤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미국문화원이 점거된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거사였다. 하지만 두 김씨는 냉정했다. 이들은 미국 대사관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농성 해제를 권유하는 편지를 넣었다. 이 밀서가 미친 영향력을 평가하기 힘들지만 대학생들은 5월 26일 72시간의 점거를 풀었다.
YS와 DJ는 브레이크를 걸 줄 알았다. 두 김씨는 대학생들의 외침에 편승하지 않았다. 광장의 요구에도 휩쓸려가지 않았다. 두 김씨의 유화적인 태도에 분노해 재야와 학생 운동권 세력이 크게 반발할 때 그들은 괴로워했지만 뚝심을 잃지는 않았다.
촛불집회가 시민혁명이라면 헌재 판결은 법치주의다. 헌재 판결에 이어 민주주의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시민혁명과 법치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수순을 통해 치유되고 극복돼야 한다.
탄핵심판 선고가 내려지면 거리는 다시 뜨거워질 것이다. 이제 여야 대선 후보들은 더 이상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에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발 더 나아가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 참석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하기를 기대한다.
광장의 외침을 정치가 수용해야 할 때다.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유승민 남경필 홍준표 등 대선 예비주자들이 국회에서 만나 난국 수습 방안을 논의했으면 한다. 이들이 정파를 떠나 고민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불안감은 줄어들 것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경쟁자가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의 진짜 경쟁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리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일지 모른다. 적폐 청산만큼 국민 통합도 중요한 이유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
[세상만사-하윤해] 이제 정치가 나서야 할 때
입력 2017-03-09 18:41 수정 2017-03-09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