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이사 오자마자 들불축제를 보게 됐다. 그것도 이틀 연속. 제주토박이도 한 번도 못 봤다거나, 몇 년 연속 비가 와서 가봤자 별로였다거나 하는 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그런데 나는 운도 좋지! 날씨는 청명했고, 20주년이라 행사도 풍성했다. 인파에 밀려 먼발치에서 잠깐 구경하다 돌아가야 했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는 부지런도 했지! 일찌감치 중심가로 진출해 점화용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행운까지 누렸다.
불놀이라는 건 왜 그렇게 매혹적일까. 바짝 마른 억새를 향해 마치 투창선수처럼 기다란 횃불을 힘껏 던지는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짜릿했다. 오름 하나가 통째로 타오를 때 불꽃은 오만 가지 모양으로 사방에서 아우성을 쳤다. 타닥타닥에서 시작해 우릉우릉으로 고조되는 불의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합주 같았다. 거기에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놀이는 수천 번의 화룡점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매혹을 다음날 경험했다. 하이라이트 이후의 마무리라 행사장은 스산할 정도였다. 새카맣게 타버린 거대한 오름 앞의 달집들은 성냥개비 몇 개 수준이랄까. 그런데 달집에 불이 붙고 그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선 사람들 틈에 끼여 있자니 전날과 다르게 마음이 푸근해진다. 펄럭이는 조그만 불길들 하나하나의 모양과 색깔을 유심히 보게 된다. 어렸을 때 읽었던, 불과 노는 아이에 관한 동화가 느닷없이 떠오른다. 세상에, 까맣게 잊고 있던 수십년 전 이야기인데. 그리고 화룡점정은 물이었다. 달집들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하자 소방차가 다가온다. 조심스레 사람들을 뒤로 물린 소방관의 어깨 위에서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시뻘겋던 장작들이 까맣게 내려앉으면서 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힘차게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아, 완벽하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차분히 이 광경을 지켜보며 서 있다. 모두 뭔지 겸손한 자세로 불의 최후에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어쩐지 말을 걸고 싶어진다. 아, 들불축제는 불이 타오를 때의 소용돌이치는 매혹과 함께 꺼질 때의 숙연함까지 느끼고 가야 제격이겠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불놀이 마무리
입력 2017-03-09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