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야구선수 출신인 게리 워드의 눈치를 보며 1루 작전 코치에만 집중했다. 미국 켄터키 주로 원정경기를 갔을 때다.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도미니카 선수가 왔다. “리, 나 좀 도와줘. 메이저리그에 있다가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니 가족을 먹여 살리기 너무 힘들어. 한국에서 홈런왕이었다고? 플리즈….”
“내는 워드와 약속을 해서 절대 안 된다.” “리, 플리즈.” 애처로운 눈빛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니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알았지?” “오케이.” “니 이것 좀 봐라.” 도미니카 선수에게 노트북을 보여주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2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적어온 야구일기 파일을 열었다. 매일 25명 선수들의 몸 상태와 타격자세, 장·단점, 안타유형 등을 기록한 데이터가 들어있었다. 손짓 발짓을 하며 타격 폼을 지도했다.
타율이 1할을 겨우 넘기던 그는 2개월 만에 3할 대 타자가 됐다. 승부욕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남달랐다. 자세만 약간 교정했는데도 금세 효과가 나타났다. 몇 개월 뒤였다. “똑똑.” 또다시 노크소리가 났다. 키가 196㎝인 체드 모톨라였다. “헬프 미, 리.” 모톨라는 바닥에 철퍼덕 앉더니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리, 네가 도미니카 친구를 도와줬다며. 나도 좀 살려줘.” “아, 그 자슥 말하지 말라니까.” “리, 나는 미국인이다. 절대 말 안할게.” “알았다. 일나라.”
“자 봐라. 자슥아. 니는 키도 큰 놈이 배트를 들고 도끼로 나무 찍듯이 아래로 내리 꽂으니 공이 땅볼이 되는 거야. 이렇게, 골프 치듯 퍼 올리라고. 알았나. 글카고 너 플레이보이냐. 여자 너무 좋아하지 말그라.” “오, 예스.” 모톨라의 실력도 몰라보게 향상됐다. 훗날 삼성 라이온즈 용병으로 한국에 왔던 틸슨 브리또도 그렇게 개인교습을 해줬던 선수다. 소문은 금세 워드의 귀에 들어갔다.
“리, 나 좀 봐야겠다.” 워드의 두툼한 입술이 실룩거렸다. “처음에 내가 뭐라고 했지.” “내가 뭘.” “마늘냄새 나는 동양 놈이 건방지게…. 또다시 내 영역을 침범했다간 넌 끝이야.” 손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모멸감마저 느껴졌다. “알았다.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파란 하늘을 보니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고국을 떠난 지 벌써 2년이나 됐다. 동양인이라고 멸시천대까지 받으니 마음이 흔들렸다.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아내가 잠결에 받았다. “여보.” “어머, 웬일이세요.” “당신, 미국 안 들어오면 내 콱 죽을끼구마. 어트케 할끼고.” 갑자기 아내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무슨 일 있죠. 다른 생각 마세요. 아이들이랑 최대한 빨리 갈게요. 절대 엉뚱한 짓 마세요!” 10일 만에 아내와 두 아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족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족을 이루도록 디자인하신 이유가 다 있었다.
1999년 9월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내가 속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트리플A팀은 30개 마이너리그 팀 중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펄쩍펄쩍 뛰며 승리를 만끽하는데 워드가 성큼 다가왔다. “리.” “머가 또 불만이고.” “미안하다. 네가 코치를 너무 잘해서 내 자리를 뺏는 줄 알았다. 내가 오해했다.” “머라 카노. 자슥아.” 우리는 얼싸안고 그간의 앙금을 풀었다. 비록 마이너리그지만 미국 야구를 체험하고 팀의 승리도 경험했으니 이제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고국으로 가는 꿈에 젖어 있는데 2년 전 나를 소개했던 에이전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만수야.” “와.” “니 메이저리그 들어가고 싶나.” “자슥아, 장난치지 마라.” “니 메이저리그 코치 됐다.” “머라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이만수 <10> “헬프 미, 리” 타격교습 애원하는 선수들
입력 2017-03-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