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박근혜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일본 정부와 합의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은 아직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하는, 의미 있는 영화가 나왔다.
제목은 ‘어폴로지’(The Apology·사죄). 동아시아 지역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NFB)가 직접 제작했다. 캐나다 출신 여성감독 티파니 슝이 무려 6년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의 길원옥(89), 중국의 차오(95), 필리핀의 고(故) 아델라 할머니가 이 영화의 세 주인공이다.
길 할머니는 열세 살 때 만주 하얼빈의 위안소로 끌려가 해방 이후에야 풀려났다.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돼 평생 외로이 살아온 그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마련한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 그럼에도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해외 어디든 마다않고 간다. 일본 길거리 시위 도중 우익단체들이 몰려와 “한국 매춘부들 꺼져라”라고 외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지막이 한탄할 뿐이다. “우리 다 죽고 나면 누구한테 사과하려고 안합니까. 살아있을 때 해야지.”
차오 할머니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앞에서 일본군에 잡혀갔었다. 위안소에서 두 번의 임신을 했으나 아이는 낳자마자 버렸다. 끔찍했던 경험담을 들려주며 “상상이 가느냐” 묻는 그의 표정이 쓰리다. 열네 살 때 일본군에 납치됐던 아델라 할머니는 지옥 같았던 과거를 가족들에게조차 숨기고 살았다. “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정정하다”고 자신했던 그는 끝내 촬영 중 82세의 나이로 일본의 사과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슝 감독은 2009년 아시아 학술여행을 통해 처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게 됐다. “이것은 단순히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지구적인 문제”라는 생각에서 이 긴 여정을 시작했다. 편향적인 시선을 거둬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영화에 담았다. 105분간 차분한 어조로 이어지는 세 할머니의 일상에선 강인한 회복력과 의지가 느껴진다.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제1273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그 전날 ‘어폴로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하루 빨리 마지막 수요시위를 하고 싶다. 수요일마다 할머니들과 승합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가 지금 꽃놀이하러 가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얘기하곤 한다”고 전했다. 16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어폴로지' 소녀들의 아픔, 누가 끝났다 하는가 [리뷰]
입력 2017-03-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