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뇌과학 분야 권위자인 김대식(48) 카이스트 교수가 내놓은 신간이다. 김 교수는 10대 시절부터 이어지고 있는 자신의 독서 여정을 소개하는데, 비중 있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질문의 힘’이다. 예컨대 그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할까 자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남들이 다 하고 남은 ‘설거지’ 연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진정한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기원은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이 아닌, 남들의 답에서 시작했다. 시작을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주어진 답의 형식적 순결에만 집착한다.’
김 교수의 주장처럼, 답을 구하는 것보다 선행돼야 하는 건 좋은 질문을 찾는 것이다, 좋은 질문의 예시는 수많은 책에 담겨 있다. 김 교수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를 차례로 도마에 올린다. 플라톤, 아르튀르 랭보,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움베르토 에코, 사뮈엘 베케트…. 여기에 유발 하라리나 줌파 라히리 같은 당대 지성이나 소설가의 업적도 살핀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는 저들이 남긴 성과를 짚으면서 김 교수의 간명하면서도 묵직한 감상이 갈마드는 구성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대목을 꼽자면 영국 옥스퍼드대 니클라스 보스트룀 교수의 저작을 소개한 챕터다. 보스트룀 교수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등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준 인물이다. 김 교수는 보스트룀 교수의 의견을 빌려 독자들에게 말한다. AI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을 때 대비해야 한다고. 책 속에 담긴 일부 내용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기계는 언젠가 우리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왜 자신이 인간의 명령을 따라야 하느냐고. …보스트룀 교수는 기계가 언젠가 질문할 수 있는 이 위험한 질문에 우리가 먼저 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계는 무엇을 원할까? 왜 기계는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가? 이 거대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말이다.’
각계각층 독자에게 전하는 김 교수의 추천 도서 목록도 이 책이 선사하는 쏠쏠한 재미다. 그는 국회의원 언론인 국방부장관 교수 등에게는 이스라엘 정치학자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을 추천한다. 그러면서 ‘한 권씩 사주고 강제로라도 읽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라고 덧붙인다.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독일 비평가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권한다. 장마철 밤에는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베어울프’를, 겨울밤에는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들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시종일관 행간에 연연하게 흐르는 감정은 책을 향한 사랑이다. 김 교수는 두루마리 형태였던 책이 종이를 잘라 만든, 지금과 같은 ‘코덱스(Codex)’ 형태로 바뀐 역사를 언급하면서 책이야말로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단언한다. PC와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수많은 오락거리가 봇물을 이루는 시대에도 책의 물성(物性)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래 적힌 글귀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책은 또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간의 뇌가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책과 길] 질문으로서의 책읽기
입력 2017-03-09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