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입김 넣는 ‘PD급 관객들’

입력 2017-03-10 00:00
지난 1월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무용단의 ‘향연’ 오픈클래스 장면. 참가자들이 무용단원들 바로 앞에서 연습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무용수에게 학춤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국립극장 제공
지난해 9월 24일 개최된 국립무용단의 ‘묵향’ 오픈클래스 장면.
국립무용단의 ‘회오리’는 오는 17일 저녁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오픈클래스’를 연다. 본 공연(30∼4월 1일·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앞서 주요 장면을 공개하는 자리다. 참가자들은 무용수로부터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춤사위를 배워볼 수도 있다. 참가비 1만원에 선착순 30명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오프클래스는 공지되자마자 당일 바로 마감됐다.

최근 공연계에 관객참여형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완성된 작품을 관람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국립무용단 오픈클래스 사례처럼 제작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관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다.

시작은 2013년 국립무용단의 ‘단’ 공연. 당시 10명을 대상으로 무료로 연습실을 공개했다. 주요 장면을 보여주고 안성수 안무가와 정구호 연출가 등과 이야기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극장 측은 점차 다른 공연에도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참가자도 30∼50명으로 늘렸다. 신청자가 쇄도하자 국립극장은 지난해 9월 ‘묵향’부터는 오픈클래스라는 타이틀 아래 유료(1만원)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매번 공지가 뜬 지 얼마 안 돼 매진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8일 “오픈클래스에 오는 사람들은 국립무용단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며, 일부는 놀랄 만큼 전문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엔 예술가와 관객의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며 “게다가 1인 미디어 시대에 오픈클래스 참가자들은 국립무용단 작품을 주변에 알림으로써 마케팅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국립극단의 리허설북 판매 증가도 비슷한 맥락이다. 리허설북은 작품의 제작과정을 심층 인터뷰, 연습 기록, 리뷰 등 다각도로 기록한 책이다. 국립극단은 재단법인 독립 후 첫 작품인 ‘오이디푸스’(2011)를 시작으로 주요 작품의 리허설북을 만들어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책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최윤영 국립극단 홍보담당은 “인기작의 경우 공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리허설북도 잘 팔린다. 올들어 ‘조씨고아’의 재공연 때는 2015년 초연 이후 만들었던 리허설북이 수백부나 팔렸다”고 설명했다.

뮤지컬계는 관객들이 작품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프로슈머로 빠르게 진화한 분야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프로슈머는 소비자가 소비는 물론 제품 개발, 유통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를 뜻한다.

CJ E&M은 2006년 창작뮤지컬 ‘김종욱 찾기’ 초연 당시 뮤지컬 동호회원 1000여명을 대상으로 배우 선호도조사를 실시해 당시 1·2위를 차지한 오만석과 엄기준을 실제로 캐스팅 했다. 관객이 캐스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후 뮤지컬 배우 팬덤의 확산과 함께 관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많이 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뮤지컬 제작사들은 쇼케이스 또는 프리뷰 기간 관객들의 리뷰나 반응을 토대로 작품을 수정하거나 마케팅 방향을 정하고 있다. 특히 창작뮤지컬은 리딩 공연이나 쇼케이스에서 나오는 관객의 반응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양혜영 CJ E&M 마케팅부장은 “뮤지컬은 다른 장르에 비해 제작과정에 관객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쉽다”면서 “전문 지식까지 갖춘 일부 관객들은 제작사 못지않게 작품을 키워간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