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야근하는 당신에게’ 펴낸 이정규 목사] 십계명에 ‘야근하지 말라’ 넣으면 어떨까

입력 2017-03-09 00:00
성경을 든 이정규 시광교회 목사가 6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출근하는 그리스도인에게/문애란 지음/복있는사람
6일 밤 10시 무렵 서울 지하철2호선 신도림역.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살바람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느 중년의 얼굴엔 근심이 어려 있었고, 한 청년이 멘 가방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야근하는 당신에게’(좋은씨앗)의 저자 이정규(39·서울 시광교회)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지방에 갔다 조금 전 도착했다고 했다.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책 얘기를 나눴다.

“2011년 교회를 개척했을 때 교인들 대부분이 20∼30대였습니다.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성경공부와 가정예배를 독려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처음엔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교인들과 대화해보니 상당수가 거의 매일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까지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인테리어나 정보기술(IT)에 종사하는 이들은 일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휴일도 없더군요.”

이 목사가 야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다. “야근이 거대한 사회구조적 악(惡)이라는 걸 깨달았죠. 매일 야근하는 가장은 가정예배를 인도할 시간도, 그럴 영적 힘도 없어요. 그런 직장인이 어떻게 봉사를 하겠어요. 교인들은 야근과 같은 격무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고 있어요. 먹고 사느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정말로요.”

이 목사의 눈빛은 진지했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경, 교리서, 기독교 고전 등을 연구했어요. 야근이 십계명 중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6계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서서히 파괴하는 사회악도 금지하거든요. 휴일 노동이나 야근은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 목사는 이 책에서 교인들의 생활을 생생히 전한다.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도 많다. “남편은 집에 오면 자기 바쁘니까 임신한 아내의 배가 산만해지는 것도 모릅니다. 야근에 치인 청년이 주일봉사에서 빠지면 교회에선 ‘봉사 왜 안하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주일에도 안식하질 못합니다. 그러다 (교회에) 안 나가게 되고…. 결국 야근은 영적 생명까지 앗아갑니다.”

그는 한 달에 서너 번 성도들 직장으로 심방을 간다. “교인들이 야근하면 목회자도 야근하게 됩니다. 그들을 만나려면 늦은 밤 만나야 하니까요. 야근하는 남편과 전업주부인 아내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릅니다. 어떤 남편이 아이들과 안 놀아주고 싶고,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다정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야근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그는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이 모든 상황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내용의 설교 4편에 1년 넘게 살을 붙여 책을 완성했다. 교인들의 삶을 밀착 취재해 그 삶을 성경적으로 해석한 목회자의 책은 좀체 찾기 어렵다. 220쪽 분량의 책에 미주 126개, 참고도서 목록만 70개다. 얼마나 공들였는지 짐작된다.

어쩌면 ‘세상의 악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의 고통을 감내하라’는 결론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목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무력한 자입니다. ‘야근 공화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그 가족을 위로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으로 썼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사회악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길 기대해봅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변화와 개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늦은 밤 지하철에 몸을 싣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할 것 같다.

■곁들여 읽기
일을 할 때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여성 카피라이터 1호인 저자 문애란이 광고회사와 사역단체에서 일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했던 고민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 일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사역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관점의 이동을 경험한다. 일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일의 성패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수십년 동안 얻은 지혜가 책 곳곳에 숨겨져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