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트 24-21 흥국생명의 매치 포인트. 흥국생명 타비 러브가 때린 볼이 KGC인삼공사 알레나의 손에 맞고 코트 밖으로 떨어지자 흥국생명 선수들은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올렸다. 백업 선수들도 벤치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코트 중앙에서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눈시울을 붉힌 채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이 9시즌 만에 정규리그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흥국생명은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NH농협 V-리그 여자부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대 0(25-15 25-13 25-21)으로 이겼다. 20승9패(승점 59)를 기록한 흥국생명은 2007∼2008 시즌 이후 9시즌 만이자 통산 4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흥국생명은 2005-2006 시즌부터 2007-2008 시즌까지 3시즌 연속 정규리그 정상에 오르며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후 중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1-2012 시즌부터 2014-2015 시즌까지 4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마침내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현대건설에 2패를 당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박 감독은 지난 시즌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올 시즌을 앞두고 이를 중점 보강했다. 덕분에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후반에 들어서도 지치지 않고 선두권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치는 외국인 선수 러브와 걸출한 토종 공격수 이재영 그리고 안정적인 세터 조송화 등으로 막강 전력을 구축해 마침내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박 감독은 경기 전 두 가지가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것은 선수들의 승리 의지와 서브였다.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도 선수들의 정신 무장을 강조했다. 양 팀 모두 이기려는 의지는 비등했다. 승부는 서브에서 작은 차이를 보였고, 이 차이는 결국 승부를 크게 갈랐다. 흥국생명은 1세트에서 4개의 서브를 성공시키며 기선을 제압했다. 흥국생명의 강한 서브에 흔들린 KGC인삼공사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또 알레나(16득점)에 대한 의존증이 심했다.
흥국생명 사령탑으로 부임한 지 3시즌 만에 정규리그 패권을 차지한 박 감독은 경기 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무 기뻐 자꾸 눈물이 난다”며 “여성 감독이라고 특별한 취급을 받기 원치 않지만, 오늘 우승으로 ‘여성 감독으로는 우승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주전 선수들이 다쳤을 때 공백을 잘 메워 준 후배 선수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챔피언결정전에 대비해 체력 회복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9년 전 정규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주장 김나희는 “막내 때 우승한 뒤 이번엔 주장으로 우승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우리 팀엔 어린 선수들이 많아 패기가 좋아 좋은 기운이 넘친다”고 말했다.
인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女 프로배구] 흥국생명, 정상 정복 “9시즌 만이야”
입력 2017-03-07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