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만수 <9> ‘땅∼ 땅∼’ 치면 홈런… 백인 코치 입이 ‘쩍’

입력 2017-03-09 00:01
이만수 감독이 2004년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에서 불펜코치로 일하던 시절, 가족과 함께 시카고 셀룰러필드 경기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데이브 단장이 손을 불쑥 내밀었다. “자, 악수 좀 합시다. 감사합니다.” “예?” 메이저리그 단장이 동양 출신 말단 코치를 찾아와 악수까지 청하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그날 야구장에 있었던 150여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사무실로 메일을 넣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이랬다.

‘당신 팀의 3루 작전코치야 말로 진정한 프로입니다. 1회부터 9회까지 팀의 승리를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는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신 팀의 감독과 코치는 팀이 곤경에 처했을 때 리 코치처럼 소리를 치거나 격려해 준 적이 있습니까. 그런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팀에서 스타가 됐다. 미국의 야구는 한국과 규모에서 큰 차이가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최고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마이너리그라고 우습게 봐선 안 된다. 내가 활동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만 해도 자체 야구장이 8개나 있었다. 마이너리그 선수만 150여명이었고, 코치는 30명이 넘었다. 마이너리그팀 전체를 이끄는 총감독 닉이 팀원 전원을 호출했다.

“리, 당신이 한국의 ‘베이브 루스’였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사흘 뒤에 150명 선수 앞에서 홈런을 한번 쳐보십시오.” “예!”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변에 한 명은 꼭 상대를 깔보는 얄미운 사람이 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 싱글A팀도 마찬가지였다. 백인 코치가 하나 있었는데 한국야구를 아주 우습게 봤다. “리, 한국 야구장은 리틀 야구장과 같다며. 네가 홈런을 친다고? 오우, 어떻게 너처럼 작은 선수가 홈런을 칠 수 있겠어.” 이번 기회야 말로 촐랑거리는 백인 코치의 콧대를 꺾고 대한민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훈련을 마치고 실내연습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주님, 제발 도와 주이소! 여기서 제가 홈런을 하나도 못 치면 한국야구는 억수로 망신을 당합니데이. 하나님도 망신을 당하실 수 있습니더.”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쿵쾅 쿵쾅’. 한국시리즈 결승전보다 심장이 더 두근거렸다. 선수 150명은 물론이고 30명의 코치와 구단 직원들까지 총출동했다. 마운드의 백인 선수가 씨익 웃었다. ‘주님만 믿습니데이.’ 초구가 빠르게 날아왔다. “땅∼” 공은 저 멀리 날아가 펜스를 맞고 떨어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 다음엔 홈런이었다. ‘땅, 땅, 땅.’ 10개의 공 가운데 6개를 홈런으로 날렸다.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

닉 총감독이 입을 열었다. “리,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불어 공이 담장을 넘어간 것 같습니다. 내일 한 번 더 시범을 보이십시오.” “오케이!”

이튿날도 10개의 공 중 7개를 홈런으로 만들었다. 닉 총감독은 놀란 표정이었다. “코치와 선수들, 앞으론 리의 타격에 대해 묻지 마십시오.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십시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더. 고통 가운데 포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니 이런 기쁨을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더.’ 분명 하나님은 나를 미국까지 보내신 이유가 있었다.

소문은 마이너리그 전체에 퍼졌다. 덕택에 199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트리플A팀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같은 마이너리그라고 해도 싱글A팀과 트리플A팀의 실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쉽게 말해 메이저리그 바로 아래가 트리플A이고 세 단계 아래가 싱글A다. 첫 출근을 하자 게리 워드라는 타격코치가 나를 불렀다. “리, 한국에서 홈런을 좀 쳤다고. 여기선 선수들에게 타격을 가르치지 마라. 너의 임무는 1루 작전코치일 뿐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