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보내는 장치, 절박한 예술가의 자화상

입력 2017-03-09 00:00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최병석 작가와 '더 큰 물과 배' 전시장.

벽에 부착된 빨간 버저를 눌렀다. 작가가 고안한 ‘회전등’이 전시장 중앙에서 빙그르 돌아가며 3면에 부착된 거울 조각을 차례로 비춘다. 형태가 다른 거울 조각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호다. 모스 부호로 ‘에스오에스(SOS·긴급구호요청)’를 뜻한다고.

“미술을 계속 할지, 집어치워야 할지 고민하며 벼랑 끝에 서 있던 시점이었어요. 딱 그 즈음에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 공모에 됐지 뭡니까. 그것도 35세 나이제한 턱걸이로요. 금호미술관은 제가 세상에 SOS를 칠 수 있는 송전탑이 돼 준 거지요.”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에는 ‘회전등’을 비롯해 ‘혼자 켜는 등’ ‘물수평 기둥’ ‘모스 송신기’ ‘신호권총’ 등 작가가 만든 도구나 장치가 전시돼 있다. 최병석(36) 작가의 개인전 ‘더 큰 물과 배’의 설치 전경은 꼭 과학 교실에 온 것 같다. 이게 무슨 미술작품인가 싶은데 작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인 것이다.

최 작가는 2008년 대구가톨릭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조각 작품을 해서, 그것도 지방대 미대 출신이 먹고 살기는 쉽지 않았다. 상경해서는 사립 미술관에서 야간 경비를 하기도 했고 유명 작가의 어시스트로도 일했다. 미술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해 뒤늦게 대학원에도 진학했고 미대 졸업 후 7년 만인 2015년에는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면서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여름, 금호미술관이 매년 4명씩 신진 작가를 공모 방식으로 선정하는 제15회 ‘금호 영아티스트’에 뽑혔다. 선발된 작가에게는 창작 지원금을 주고 개인전을 열어준다. 시쳇말로 숨통이 트인 것이다. 그 즈음 아내도 9평 한옥을 사서 가게를 열었다. 당시 수리비 견적이 1억원이 넘자 그가 직접 나섰다. 개인전 준비 작업을 하는 동안 한옥을 고치며 배운 지식이 동원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회전등’이 또 하나 있다. 이것이 비추는 거울조각이 뜻하는 모스 신호는 ‘O.K.’이다. 세상이 그에게 ‘괜찮아’라는 화답을 보내온 듯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업세계에는 도구나 장치들이 많다. 2015년 첫 개인전 ‘숲 속 생활 연구소’에서도 두더지를 좇는 장치, 돼지기름으로 초를 만드는 장치 등을 선보였다. “저는 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이런 장치를 통해 미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제게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장치들입니다.”

올해 금호 영아티스트에는 최 작가 외에 손경화 이동근 황수연 작가가 선정됐다. 이들의 개인전은 금호미술관에서 4월 2일까지 열린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