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40대·여)는 10여년 전 B씨와 재혼했다. 첫 결혼에서 무관심과 지독한 생활고에 지쳤던 A씨는 B씨만큼은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이라 믿었다.
B씨의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으며 빚이 쌓이자 믿음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A씨가 빚을 갚기 위해 식당일에 나섰는데, B씨는 온종일 전화를 걸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식당까지 찾아와 욕설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A씨의 옷을 찢기까지 했다. 10년 동안 의처증에 따른 폭력이 이어졌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A씨를 B씨가 “왜 이리 늦게 왔느냐? 누구를 만난 거냐”고 다그치며 마구 때려 다리뼈가 부러졌다.
입원한 병원까지 쫓아와 행패를 부리자 참다못한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앞에서 B씨는 돌변했다. “아무 일 없다”며 경찰을 돌려보냈다. 그날 밤 A씨는 B씨에게 한없이 맞았다. 여성긴급전화 1366에 도움을 호소한 A씨는 “폭력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두려움을 모를 것”이라며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 큰 폭력이 되돌아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여성긴급전화에는 지난해 A씨와 같은 상담 전화가 26만6901건 접수됐다. 2012년 22만3109건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A씨처럼 가정폭력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할 때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체포우선주의 법안(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8일 발의한다. 현행법은 가정폭력범죄 발생 시 경찰이 현장에서 즉시 체포할 수 없어 재발 방지에 한계가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 가정폭력 재범률은 32.2%로 높지만 기소율은 14.9%로 낮다.
폭행·상해 등 직접적인 폭력도 가정 내 일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보다는 접근금지 등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는 가정보호 사건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가정보호 사건은 2010년 3257건에서 2015년 2만131건으로 6.1배 증가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외국에서는 보호관찰관들이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평가한 뒤 그 위험이 낮을 때만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한다”며 “일단 체포해 입건해야 지금처럼 유야무야 기소도 못한 채 연 100명씩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들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은 이처럼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하는 예외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도록 했다. 가해자가 상담치료를 받으면 기소를 유예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도 폐지키로 했다.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는 면죄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초청한 미국 뉴욕주 킹스지방법원 에스더 모겐스턴 부장판사 역시 가정폭력은 체포부터 해서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가부에 내비쳤다”며 “다음달 가정폭력 처벌에 대한 포럼 개최를 준비하는 등 사법기관과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 의원은 “가정폭력의 경우 범죄로 인식해 엄히 처벌하기보다 가정의 유지에 초점을 두다보니 피해자 인권 보호가 부차적이 되고 가정폭력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초동 응급조치 단계에서부터 가해자를 단순 분리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다른 폭력범처럼 현장에서 체포해 피해자와의 접근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단독] 집안일?… 폭력남편 즉시 체포한다
입력 2017-03-07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