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 불평등 심화… 여성은 ‘보호대상’ 아닌 ‘권리주체’

입력 2017-03-08 00:00
세계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현장의 목소리로 젠더폭력 근절 정책을 밝히다’라는 이름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가정폭력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 가정보호가 아닌 피해자 인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젠더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여성을 향한 폭력을 막기 위해 법과 정책을 만들어도 적절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하루 앞둔 7일 오전 한국여성의전화, 장애여성공감 등 6개 여성단체가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젠더폭력 근절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지적했다.

젠더폭력은 성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의미한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 물리력이 동반되는 폭력만 젠더폭력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젠더폭력을 더욱 포괄적인 인권침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젠더폭력에서 피해자 인권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 인권보다 가정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지난 2월 중랑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한 A씨(27)의 경우 남편의 폭력을 세 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A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A씨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 대표 등은 “피해자 신변을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를 피해자에게 전가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성차별적 발언 등으로 2차 피해를 입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여성의 25%가 2차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인권 문제는 지난 1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 대한민국 출산지도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의 출산지도 논란은 정부의 여성 인권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를 열었다. 지도는 전국 시·군·구별 가임기 여성 분포도를 수치화해 지역별로 순위를 표시했다. 여성을 출산도구로 본다는 반발과 논란이 이어지자 하루 만에 홈페이지를 닫았다. 행자부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성 평등 실현을 저해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성 평등 걸림돌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달 24일에는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이 저출산 원인을 여성의 ‘고스펙’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고스펙 여성이 배우자를 고르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부부처와 국책연구기관조차 낮은 여성 인권 인식을 보여주고 있어 성 평등 정착을 위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여성의 지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대졸 취업자는 2014년을 기준으로 여성(16만5706명)이 남성(16만1480명)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반면 젠더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 젠더격차지수에서 한국은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107위, 2013년 111위, 2015년 115위까지 떨어졌다. 젠더격차지수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계량화한 것으로 순위가 낮을수록 불평등이 심한 것을 의미한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