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퍼즐 맞춰라” “뇌물 고리 끊어라”… 세기의 재판

입력 2017-03-08 05:00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인 최순실씨(왼쪽)와 차은택씨가 7일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들어서고 있다. 두 사람이 마주한 것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처음이다. 뉴시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국정농단 의혹 수사는 막을 내렸지만 유·무죄를 가리기 위한 법정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박 특검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피고인 대부분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 향후 재판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핵심이었던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 사건은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공판준비기일이 열린다. 공여 혐의자인 이 부회장이 부인하는 만큼 재판은 특검이 확보한 각종 간접증거의 성격을 둘러싼 다툼이 예상된다.

특히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에서 오간 대화가 쟁점이다. 7일 공소장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 독대 자리에서 경영권 방어 지원을 요청하고 박 대통령이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한다. 승마 유망주 지원에 나서 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청도 이어진다. 이듬해 2월 독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삼성의 최씨 딸 정유라씨 지원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특검은 이 대화가 세 사람의 뇌물 관계를 설명하는 단적인 장면으로 본다. 실제 독대 전후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비롯해 삼성 승계 문제 해결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반면 이 부회장은 ‘경영권 방어’ 요청은 경영 활동을 위한 정상적 민원이고, 오히려 박 대통령으로부터 최씨 일가 지원을 강요받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결국 재판 결과는 독대에서 나온 삼성의 요청을 대통령으로서 수렴할 수 있는 정상적 민원의 범주로 볼 수 있는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진행된 일련의 정부기관 움직임을 뇌물의 대가로 볼 수 있는지 등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 접전지인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은 이미 진행 중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두 번째 재판은 오는 15일 열린다. 주요 피고인인 두 사람의 입장은 첫 재판에서 미묘하게 엇갈렸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정권의 문화정책이라고 항변했다. 과거 정권에서 편향적으로 이뤄졌던 문화계 지원 정책을 바로잡는 정상적 정책이었다는 말이다. 반대로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를 지원에서 배제하기 위한 ‘차별정책’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다만 조 전 장관 본인은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들 입장이 다른 만큼 재판도 ‘각개전투’ 양상을 띨 가능성이 크다. 특검으로서는 블랙리스트 정책 자체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한편 각 피고인들이 작성·관리에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특검은 두 사안에서 박 대통령을 ‘최종 지시자’로 지목하고 있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한 이유다. 박 대통령 직접 조사가 무산된 점은 향후 재판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지시자의 입장이 수사에 반영되지 않은 만큼 재판부가 뇌물 혐의 사실관계와 블랙리스트 정책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더 신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화여대 학사농단 재판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경희 전 총장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이 정씨 부정 입학과 학점 특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수혜자인 정씨는 덴마크에서 국내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재판은 오는 21일 열릴 예정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