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와 함께 불어 닥친 매서운 바람에 재활용센터 입구를 막아 둔 방수포가 힘없이 펄럭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화마가 덮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센터 안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선반엔 손님을 맞이하던 제품들 대신 잿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6일 찾은 인천 계양구 재활용센터는 지난 1일 밤 누전에 따른 화재로 전소됐다. 2001년 개소 후 지역 내 노숙인들이 자활·자립의 꿈을 펼쳐오던 공간이었다. 16년 동안 450여명의 노숙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현장에서 만난 엄진용(30)씨는 “지난주에 상태 좋은 냉장고가 들어와서 열심히 수리까지 마치고 전시해뒀는데 이렇게 됐다”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검은 물체를 가리켰다. 근무 5년차인 엄씨에게 재활용센터는 ‘알바생’ 딱지를 떼고 사회인으로서 얻은 첫 일터였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중학시절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아버지의 사업 실패, 빚더미에 올라 집에서 쫓겨나야 했던 설움 등으로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군 제대 후 단칸방을 전전하던 엄씨는 결국 거리로 내몰렸다. 하지만 지인의 소개로 인천 해인교회(이준모 목사·재활용센터 대표이사)가 운영하는 노숙인쉼터에 발을 담그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쉼터에서 생활하며 재활용센터 일을 배우게 된 것. 엄씨는 “물건을 옮기는 것부터 운전, 가전제품 수리, 가구 손질, 매장관리 등을 배우면서 ‘나도 사회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그는 7개월여 만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지원을 받아 인근 원룸으로 둥지를 옮겼다. 적지만 귀한 급여를 알뜰히 모은 덕분이었다. 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5명의 노숙인들을 챙기며 팀장도 맡았다. 최근엔 총신대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향한 사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막 꿈을 향해 도약하려던 참이었는데 꿈을 키워준 공간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거죠. 불이 나던 날 밤 현장에 도착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엄씨를 토닥이던 센터장 김영민 목사는 “재활용센터가 그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자립하도록 돕는 젖줄 같은 곳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센터는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추산 피해액은 5000여만원에 달하지만 얼마를 보상받을지는 손해사정결과에 달려 있어 미지수다. 당장 노숙인 등 8명 직원의 급여를 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매달 35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도 걱정이다.
직원들과 매일 아침 예배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이준모 목사는 이곳에 세워질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국민일보 인터넷뉴스를 통해 화재 소식을 들었다며 전기장판을 보내주겠다는 분도 계시고 작지만 귀한 후원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숙인 자립터가 다시 세워지도록 힘을 모아 주세요.”(농협 301-0025-4562-91, 예금주: 내일을여는집·010-8325-7004).
인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불타버린 자활의 꿈… 재기의 힘 모아 주세요”
입력 2017-03-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