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한 태영호(55) 전 주영 북한공사는 7일 국민일보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거침이 없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부터 김정남 암살, 김정은 체제, 북핵 사태 등 여러 이슈를 넘나든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던 그가 딱 한 번 질문에 끼어들었다. 김정남 관련 문답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 할 때였다. “김정남과 관련해 첨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김정남의 시신에 관한 것이었다.
제2의 성혜림을 막아라?
“북한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대사 추방까지 이뤄졌다. 북한 외무성 이길성 부상이 지난 토요일 중국에 갔다가 돌아왔다. 왜 갔겠나? 김정남 시신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 가장 노리는 건 시신을 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시신 향배를 결정하는 열쇠, 누가 쥐었을까? 중국이다.
김정은은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껄끄러워했다. 그래서 죽였고, 시신까지 북에 가져다 놓으면 이 시끄러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그에 대해 떠들겠나. 영원히 김정남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시신이 가족에게 넘어간다면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중국으로 간다. 가족이 있는 마카오나 베이징에 김정남 묘지가 생기고 비석이 세워진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 언론에 김정남 묘비가 비춰지게 된다는 뜻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성혜림 묘비가 그랬다. 김정일 체제의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비운의 생을 살았던 북한인 성혜림의 묘가 언론에 등장했듯, 김정남의 묘가 해외에 생기면 김정은 체제에서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시신을 북에 가져가려는데, 칼자루를 중국이 쥐고 있다. 김정남 가족이 DNA 검사를 위해 말레이시아에 가려 해도 중국이 ‘안전을 못 지켜준다’고 하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가서 검사를 했다 치자. 중국 당국의 동의가 있어야 시신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결국 중국에 못 가면 말레이시아도 타국인 시신을 계속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장기화되면 시신을 북에 가져갈 수 있다는 게 북한의 노림수다.
이길성은 그래서 중국에 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시신을 받지 말도록 요청하려고. 중국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김정남의 고향은 북한이다. 사람이 죽으면 고향에 묻혀야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도 다 북에 있지 않은가. 응당 북에 묻히는 게 인간의 도리다. 그러니 시신을 우리가 가져가도록 너희는 거절만 해 달라.’ 말레이시아와 외교 단절이나 국제적 고립 같은 것은 지금 북한의 관심 밖에 있다.”
-그렇게 시신을 북에 가져가려는 작업이 지금 잘 안되고 있는 것인가.
“잘 안됐다고도 볼 수 없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가족이 안 나타난다면 북한 공민인 김정남 시신을 끼고 있을 명분이 사라진다. 그렇게 장기화되도록 중국 옷자락에 매달리는 것이다.”
-만약 북에 가져간다면 시신을 어떻게 할까.
“누구도 알 수 없는데, 태우든 없애든 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완전히 지울 거다.”
동창리 미사일은 자신감 표현
-북한이 6일 또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후 내놓은 말을 보면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핵전투부 훈련이란 표현을 썼다. 실전에선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전략로켓군에 대한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관리체계를 수립하는 시험이라고 했다. 북한군 구조는 상당히 복잡하다. 한국처럼 모든 군이 합참에 집결돼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군이 북한 총참모부에 집결돼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며칠 전 합동훈련이 시작될 때 김정은이 간 수도방위사령부는 총참모부 소속이 아니라 김정은 최고사령관 직속이다. 이번에 미사일을 발사한 전략로켓군도 총참모부가 아닌 김정은 아래에 있게 됐음을 말한 것이다.
셋째는 발사 장소다. 얼마 전 발사한 곳은 황해도, 지난해는 동해안 원산 부근이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에 확고한 자신이 없을 때, 공중 폭발이 우려될 때는 동해안에서 한다. 이번에는 평안북도 동창리 발사장에서 일본을 향해 4발을 쐈다. 이제 불발 사고는 없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동창리에서 쏜 것이다.
넷째, 주일 미군기지 타격능력을 보여주는 시험이라고 했다. 이렇게 콕 찍어서 발사 목적을 강조한 것은 드문 일이다. 탄도 비행거리가 일본 전역을 타격권에 넣었다. 이미 남한 전체를 타격할 수 있는데, 일본까지 가능함을 확고히 보여줬다. 왜 이것을 강조했을까. 북한 대남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쟁 시 미군 증원무력을 차단하는 일이다. 만일 차단에 실패해 미군이 참전할 경우 북한은 일본을 때리려 한다. 미군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중국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중국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일본을 치는 것이다. 일본이 개입하면 중국이 방관할 수 없어 개입하게 되고, 그러면 전쟁을 국제화할 수 있다. 6·25전쟁과 같은 구도를 만들려는 게 북한 의도이고, 이번 미사일 시험은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미사일을 발사한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는 어떤 조직인가.
“북한의 미사일 전담 주체가 ‘전략로켓군’으로 따로 편제된 건 역사가 오래지 않다. 3∼4년밖에 안 됐다. 김정은이 집권해서 전략로켓군사령부를 따로 만들고, 미사일 개발 성과가 나오면서 그 지위가 상당히 올라갔다. 전략로켓군 사령관이 별 하나짜리 소장이었는데, 지금은 별 넷 대장이다. 거기에 총참모부에서 김정은 직속으로 바뀌었다는 건 그만큼 북한 전력에서 핵미사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다음 도발 수순은 뭘까.
“핵실험이다. 김정은 신년사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력 강화를 계속할 것이다. 시기는 한국 정치 일정과 관련되는데, 원래 12월 대선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올해 말까지 핵과 ICBM을 완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한국 정치상황이 바뀌면서 북한의 행보를 시기적으로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핵과 미사일로 김정은이 얻으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김정은 정권에 제일 취약한 분야는 김정은의 장기집권 명분과 정체성이다. 김정은은 앞으로 30∼40년간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북한을 이끌고 세습통치를 뿌리내리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것을 단단히 다져줄 방도를 핵과 미사일로 본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못한 핵보유국 지위를 젊은 김정은이 5∼6년 안에 한·미와 협상해서 얻는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된다. 이를 통해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지금 김정은도 대북제재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장기집권에 불리하고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대북제재 무용론이 제기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핵실험, 미사일 실험을 계속해서 새로 등장하는 한국 정부가 ‘별 방도 없으니 김정은과 타협하자’고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타협점을 만드는 것이 김정은 목적이다.”
김정은 체제의 가장 충격적 사건
-김정은 집권 5년간 북한 주민들이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건은.
“장성택 처형이다. 왜 충격적이냐면 김일성 때도, 김정일 때도 가문 내 권력싸움은 있었다.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 조직부장을 지방으로 내보내고 이복형제를 외국에 내보내고 곁가지를 다 쳐내서 유일통치를 수립했다. 이것을 사람을 죽이면서 하지는 않았다. 또 비밀에 부쳤지 공개적으로 안 했다. 또 주민들은 이복동생 김평일이 체코대사로 나간 것을 잘 모른다.
김정은이 처음 가문 내 싸움을 북한 주민에게 터뜨렸다. 또 장성택 비행을 다 털어놨다. 그 비행 자료를 접하는 사람들 반응이 계층별로 달랐다. 판결문을 보면 장성택이 여러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말이 있다. 장성택이 여러 여성 사이에 가진 아이들, 유명한 영화배우나 연예인이 다 잡혀 수용소 갔다. 이걸 듣고 제일 격분한 게 여자들이다. 김일성의 딸, 공주를 데리고 살면서 뭐가 부족해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고, 조용한 여자도 아니고 잘나가는 배우와 불륜을 갖고 있었거든.
또 장성택이 마약중독자로 돼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가문을 제일 청렴결백으로 봤는데 김일성 사위가 마약중독자? 이게 뭐냐. 게다가 해외에 나가면 하룻저녁에 카지노에서 수백만 달러 탕진, 이게 뭔 소리냐. 인민은 외화 벌어들이는데 해외 카지노 다니면서 사위가 탕진? 이런 소리가 나오니…. 조용히 해결해야 할 일을 김정은이 판단 잘못했지. 가문 내 부패상이 인민들에게 다 알려졌다.”
-일종의 신화가 허물어진 건가.
“그렇다. 그게 장성택의 생활이 아니라 김정일의 생활이었다. 매일 섹스파티, 마약 등. 장성택을 통해 김정일을 본 것이다. 둘이 매제간이라서 늘 붙어다녔는데.”
-평양에도 양극화가 심하다는데.
“김정은이 등극한 뒤 국민에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에 있는 일체 하부구조 건설을 중단하고 평양에 몰두했다. 아파트 짓고 그 다음에 문수물놀이장, 능라유원지 등 유흥시설을 많이 건설했다. 그런 유흥시설을 건설하고 돌아가고 TV에 나가면 상당히 보기 좋고, 변화된 인상을 준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어떤 사람이 거기에 가는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 화려한 시설이 옆에 있지만 평양 주민 70∼80%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유흥시설 놀이장 구락부가 건설되면 전기 사정이 열악하니 치적 부각하기 위해 온 구역 전기 다 자르고 거기만 보전해준다. 사람들은 짜증난다. 그러니 주민 갈등이 첨예하다. 하루 그럭저럭 살자면 최소 5달러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공무원 노동자 한 달 노임이 3달러도 안 된다. 부패 권력에 못 낀 평백성에게는 골 때리는 현상이다. 평양에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권력층과 소외층 갈등 모순이 첨예하다. 평양의 간부 주택, 시내 중심 주택은 전기가 잘 들어오는데, 길 건너편 일반 주택은 캄캄하다.”
김정은이 중국에 못 간 이유
-김정은이 중국에 못 간 것인가, 안 간 것인가.
“못 갔다. 원인은 핵 때문이다. 김정일 때는 핵 개발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핵 개발은 핵무기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용이라고 했다. 평화협정만 맺고 군사위협 안 하면 핵 걷겠다고 기만했다. 김정은은 내놓고 한다. 미국 러시아가 핵무기 내놓으면 내놓겠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야단이다. 김정은이 와라. 핵을 포기하겠다면 살 수 있게 식량·원유·경제 원조 주겠다. 일단 핵 포기 정책이라도 밝히라는 것이 중국의 조건이다. 김정은이 중국에 가려면 일부 조건은 들어줘야 한다. 6자회담 복귀라든지. 김정은이 버티고 있으니 방문이 이뤄지지 않는다.”
-북·중 관계는 어떻게 되리라고 보나.
“김정일 때보다 냉각은 됐지만 중국의 전략적 결단 문제다. 비핵화냐, 김정은 안정이냐인데 김정은 안정을 선호하고 있다. 왜? 북은 결국 중국에 전략적으로 미국 한국 영향력 차단의 완충지대다. 중국은 될수록 김정은 정권이 안정적으로 오래 가길 바란다.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 흐름에 합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결정적 대북제재 고삐를 조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결심만 하면 북한은 2∼3년 내 붕괴되고 마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왜? 대만 때문이다. 만일 북한 핵무장화가 되면 한·일 핵무장화는 시간문제다. 그 다음은 대만이다. 대만이 핵무기 갖추면 중국에는 대재난이 된다. 이걸 막으려고 중국이 북한 체제를 묵인하면서 비핵화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한·일은 제발 핵무장하지 말라는 게 중국의 뜻이다.”
김정남 암살은 ‘공개처형’
-김정남 암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날 아침 아이들이 TV에서 뉴스가 나온다고 하더라. 놀라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김정남이 살아 있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스탠딩 오더’라는데, 김정은의 다른 스탠딩 오더는 뭐가 있나.
“나처럼 김정은 정권 반대해서 싸우는 사람은 아무래도 스탠딩 오더에 들어갈 게 불 보듯 뻔하다.”
-암살 방식이 백주대낮의 ‘공개처형’ 같았다. 누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일까.
“소음기를 단 총으로 집에서 나오는 걸 죽일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는데 왜 공항에서, 독극물로, 잔인한 방법을 썼느냐,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에서 한국 영화보다 잡히면 뇌물 주고 풀려나지만 한국 영화 보급(배포)하다 잡히면 총살이다. 그냥이 아니고 다 모아놓고 쏴 갈긴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러면 안 되겠구나 한다. 김정은이 말하는 공포 선행통치가 그런 것이다. 인간이 가진 공포감을 제대로 자극해 그런 일을 못 하게 한다. 김정남 죽는 모습이 TV로 나갔는데, 여론조사 해보니 탈북민이 그걸 보고 많이 위축됐다고 한다. 북에 친척도 있고, 나도 암살당하면 어떡하나, 이게 김정은이 노리는 것이다. 하나 쳐서 1만명, 10만명이 잠자코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본인도 공포심을 느꼈나.
“암살사건 이후 내가 아주 우습게 여긴 것이 있었다. 어느 언론에서 내가 위축돼 공개 활동 중지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노린 게 바로 그것인데. 그 보도에 열 받아서 TV 생방송에 나갔다. 김정은은 장성들을 대공화기인 고사포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 꼼짝 못하게 한다. 이게 아직은 효력을 보고 있다. 심리라는 게 사람 하나 죽이면 처음에는 반발심이 나지만 피해가 나에게도 닥칠까봐 움츠러든다.”
-보위성 소행이라는데,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보위성은 간첩 잡는 기능과 체제 이단자를 없애는 두 기능을 한다. 북한 내부에서 체제전복 꿈꾸거나 한국 영화 유포시키면 보위성의 대상이 된다. 또 해외에 보위성 네트워크가 깔려 있다. 대사관에도, 북한 식당에도 있다. 해외에서 김정은 정권에 위협되는 사람 제거하는 것이 보위성 임무다. 김정남 암살범들이 정찰총국이냐 보위성이냐 분분한데 정찰총국의 제거 대상은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다. KAL기 폭파나 한국인 선교사 암살처럼. 북한 공민인 김정남은 보위성 관할이다.”
-김정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지금 범죄 행위가 너무 많다. 용서받기 힘들다. 국제형사재판소 회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서 핵을 다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이바지한다면 목숨만은 부지해줄 수 있지 않을까.”
만난 사람=태원준 논설위원, 정리=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태영호 단독 인터뷰] “장성택 처형으로 김정은 일가 부패상 다 알려졌다”
입력 2017-03-07 17:52 수정 2017-03-07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