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이 살해됐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북한의 테러 공작으로 추측되고 있다. 자신의 이복형까지 잔인하게 암살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위치에 대해 엄청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로 폭군의 나약함과 불안의 발로라는 것이다.
권력을 휘두르며 탄압을 일삼는 독재자는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라크를 집권했던 사담 후세인은 지하 벙커에 머물면서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자신의 행방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 장소에 하루 이상 머물지 않았고 식당도 여러 군데를 예약했으며 음식과 물건은 그에게 닿기 전 철저한 사전 검사를 거치게 했다. 덕분에 후세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지나친 보호 속에 있었던 통치자 중 한 명이었으며, 스탈린만큼이나 그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물론 영화이기는 하지만 후세인의 이야기를 다룬 한 작품에서는 후세인이 200명의 이라크 정부 고위층들을 모아놓고 그들 중 반역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고위층들이 뺨을 맞고 굴욕을 당하고 처형당하기 위해 끌려 나갈 때 후세인은 웃거나 미소를 짓는데 바로 편집증적 모습이다. 편집증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잘 의심하고 믿지 않는 데에 있다. 정확한 근거나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거나 이용하거나 속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폭군들은 불안감과 편집증에 시달리곤 하는데, 심지어 병이 생겼을 때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의 폭력과 암살 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암을 진단받았던 베네수엘라 대통령 휴고 차베스는 자신의 암이 미국의 암살 시도 때문이며 어쩌면 미국이 남미에 암을 퍼뜨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편집증적 의심을 보이기도 했다.
후세인, 히틀러, 김정일의 성격 특성을 연구한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독재자의 6가지 증상으로 새디스틱, 반사회성, 편집증, 나르시시즘, 조현증, 분열증을 제시했다. 이 셋은 이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데 김정일은 히틀러보다는 후세인과 더 많은 성격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에게서 높게 나타난 특성은 새디스틱, 편집증, 나르시시즘, 그리고 조현증이었다. 그는 자신이 ‘경애하는 아버지’로 추앙되는 것으로부터 오는 망상과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독재자들이 망상을 가질 때 자신이 신적 존재임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하면서 파국이 일어난다. 모두 나를 지지한다는 환상과 망상, 거기에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들은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요구한다. 자신의 파워에 집착하면서 더욱 더 강한 탄압과 강압적인 통치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힘이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데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폭력을 가하는 것도 상대의 행동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처벌이라고 정당화하게 되고 심지어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새디스틱한 성향까지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배층과 일반 대중 모두가 그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에는 민감해 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악순환으로 독재자들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심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 먼저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재를 하면 할수록, 강압통치를 하면 할수록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힘만큼이나 불안감 또한 커지게 된다. 바로 독재자의 딜레마다. 자신의 옳았다는 지지와 과시할 더 큰 힘이 필요한 김정은의 불안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청사초롱-곽금주] 독재자의 딜레마
입력 2017-03-07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