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사건이 터지고 나서 즉각 떠오른 것은 ‘트로츠키의 암살(1972)’이라는 영화였다. 북한 김씨 3대의 롤 모델인 소련의 독재자 요셉 스탈린이 정적이었던 레온 트로츠키를 암살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다. 스탈린은 혁명동지였으나 권력을 놓고 다퉜던 트로츠키가 해외로 망명했음에도 끝까지 추적해 1940년 멕시코에서 그를 암살했다.
그러나 조셉 로지가 만든 영화는 영 신통치 않았다. 캐스팅의 경우 트로츠키역의 리처드 버튼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해도 암살자역의 알랭 들롱은 어울리지 않았다. 들롱은 스타일리시한 암흑가의 암살자로는 멋질지 몰라도 정치적 암살자로는 튄다는 느낌을 주었다. 알다시피 실제 암살자는 생김새건 풍기는 분위기건 아주 평범한 법이다. 그래야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본명이 라몬 메르카데르인 스페인 출신의 공산주의자로서 소련 내무인민위원회(NKVD) 요원이었던 트로츠키의 암살자 프랭크 잭슨의 사진을 보면 대단히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렇다보니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암살 음모를 다룬 ‘자칼의 날(1973)’이 생각났다. 명장 프레드 진네만이 만든 이 영화는 클래식 반열에 올라선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원작소설 못지않게 걸작 대접을 받고 있다. 기자 출신답게 디테일 묘사가 일품인 포사이스의 소설을 잘 극화한 것도 그렇거니와 평범한 용모를 지닌 에드워드 폭스를 살인청부업자 자칼로 캐스팅한 것도 성공 이유였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김정남 암살을 두고 ‘권력의 속성’이라면서 김정은과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구설에 올랐지만 사실 암살은 인간사의 일부다. 영화도 일찍부터 암살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뤘다. 영화 초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D W 그리피스, 1915)’만 해도 링컨 대통령 암살을 극화했다. 이후에도 암살 영화들은 끊이지 않고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그 어떤 암살 영화도 상영되지 못했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12> 암살영화
입력 2017-03-07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