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소설이란 걸 썼다. 원고지 60매를 사흘 만에 썼는데, 그 폭발적인 필력 뒤에는 십대의 체력과 문학선생님께 소설을 보여드리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문학선생님은 로빈 윌리엄스로 통했다. 외모도 흡사했지만, 온기를 발산하는 분이셔서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선생님처럼 느껴졌다. 단점이 있다면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는 여고생들에게 기생충 얘기를 하시는 센스 정도? 나는 선생님 반도 아니고, 그리 튀는 학생도 아니었다. 나를 알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찾아낸 게 소설이었다. 선생님께 소설을 썼는데 한번 봐주실 수 있느냐고 여쭤본 후, 그날부터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다음 수업 전까지는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선생님은 내 소설에 대해 칭찬을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반올림한 칭찬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게는 어떤 시작점이 되었다. 그러다 졸업한 지 십오 년쯤 지났을 때, 지금 동네로 이사를 왔고 슈퍼에 갔다가 선생님을 봤다.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제자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으실까. ‘선생님 저 예전에 수업 들었었어요. 소설도 봐주셨는데. 참 감사했어요’ 한다면.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데, 인사할 타이밍이 참 별로였다. 카운터의 아주머니가 선생님께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할아버지, 옆으로 좀 비껴 서세요. 그렇게 입구를 막고 계시면!” 결국 나는 어정쩡하게 기회를 엿보다 그냥 돌아왔다.
이 얘기를 하는 건 최근에 두 번째 기회를 만났고, 또 놓쳤기 때문이다. 길가였는데 이번엔 내 꼴이 너무 초라해서였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방금 내가 누구를 본 줄 알아?” 하자, 친구는 나만큼이나 들떴다. 그리고 내가 두 번이나 망설인 이유가 어쩌면 타이밍 때문만이 아님을 아는 것도 같았다. 나는 좀 쑥스러웠던 것이다. 청산유수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선생님을 보는 순간 뭔가 좀 쑥스러워졌다. 다시 쭈뼛거리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세 번째 기회가 또 올까. 온다면 그때는 꼭!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로빈 윌리엄스
입력 2017-03-07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