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오전 동유럽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를 출발해 북동쪽에 있는 디브라 주로 향했다. 해발 1613m인 다즈티 산을 굽이굽이 돌아 4시간여를 차로 달리자 우측으로 큰 광산이 보였다. 불키제 지역의 크롬 광산이었다. 크롬 채취를 위해 산을 깎아 생긴 돌덩이들이 높게 쌓여있었다.
미니버스에 동승한 월드비전 알바니아 직원 놀라씨가 “광산 인근에 사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고 설명했다. 신윤진(52) 부여중앙성결교회 목사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애들이 광산에서 일해 가족들을 부양한다고요”라고 물었다. 신 목사는 국민일보와 국제구호개발NGO 월드비전의 ‘밀알의 기적’ 모니터링 방문단의 일원으로 정은숙 사모 등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마을에 사는 길시(10) 집에 가보니 말 그대로였다. 길시는 하루 3∼4시간씩 광산에서 크롬을 채취한다고 했다. 일반 돌보다 가벼운 크롬을 골라내는데, 사나흘 일해 고작 2달러를 벌었다.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이는 길시뿐이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집을 나간 지 오래였다. 어머니와 누나 에르미라(15·여)는 천식을 앓고 있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세 식구가 사는 집은 6㎡(약 2평). 한쪽엔 난로가 있었고 반대편엔 천이 너덜너덜한 소파가 있었다. 길시 엄마는 계속 밭은기침을 했다. 한겨울인데도 스웨터만 입고 있었다. 정 사모가 “두꺼운 옷은 없냐”고 묻자 월드비전 알바니아 디브라사업장 책임자 알린다씨는 “마땅한 옷이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도 보통 저렇게 입고 크롬을 캐러 나간다”고 했다. 정 사모는 “아이고”라고 한숨을 쉬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나마 지금은 이전보다 나아진 상태라고 했다. 길시가 월드비전의 정기 후원을 받으면서 엄마도 병원 치료를 받게 됐다. 이전에는 병상에 누워 거동도 못했다. 길시는 엄마가 죽을까봐 곁을 떠나지 못했다. 알린다씨는 “무엇보다 길시의 누나가 가족과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며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보통 저 나이쯤 성매매로 내몰린다”고 했다.
길시네 앞집은 상황이 더 어려웠다. 그 집에는 60세 할아버지 서딕씨와 딸 둘, 손녀딸 둘이 있었다. 1남 3녀인데 아들은 남의 광산에서 크롬을 캐다가 감옥에 갔다. 막내딸은 아이 둘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 이 아이들은 크롬을 캐러 산에 갔는데 둘 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신 목사가 “기도해 드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곳 주민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서딕씨가 “좋다”고 하자 신 목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하고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 이곳에도 은혜를 베푸소서, 이들에게 소망을 허락하소서”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했다.
서딕씨 가정은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정기후원자는 아직 없어서 상황이 급박한 경우에만 지원을 받는다. 후원자가 없는 아이나 가정에는 후원 아동을 지정하지 않은 후원금 등으로 돕고 있다.
이튿날엔 월드비전의 주거지원 현장을 방문했다. 디브라 주의 중심도시 페슈코피에서 자동차로 30여분 떨어진 곳이다. 지자체와 함께 결연아동인 로셀라(8·여) 가족의 집을 짓고 있었다. 66㎡(20평) 정도의 단층집으로 방이 두개였고 건물은 이미 완성됐다. 일꾼 10여명이 바닥 공사를 위해 시멘트와 모래를 섞고 있었다.
다음 달 집이 완성되면 로셀라와 5세 남동생, 3세 여동생이 엄마 아빠와 함께 살게 된다. 아버지 위덤 지바코(35)씨는 “우리 집이 생긴다는 게 기적 같다”고 감격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
오후에는 인근 카스트리오트 초·중등학교를 찾았다. 월드비전이 제작한 아동권리 보호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는 곳이다. 알바니아는 가부장적 성향이 강해 가정폭력도 빈번하다. 이곳 아동인권센터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아동의 60%가 정신적 폭력, 50%가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으며 10%는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전교생은 학생들 스스로 만든 아동폭력대처 상황극을 봤다. 아동권리 선언문도 함께 낭독했다. 학교 책임자는 “월드비전의 아동보호 프로그램 덕분에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졌고 당장 교내 따돌림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감사했다.
신 목사는 “여러분을 통해 미래의 알바니아를 보고 있다”며 “우리가 더 열심히 도울 테니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격려했다.
■디브라·리브라즈드 지역 아동 8000여명과 결연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있는 알바니아는 유럽 최빈국으로 꼽힌다. 1912년까지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45년간 공산정권 아래 있었다. 1991년 민주화되고 시장경제가 도입됐지만 부정부패가 심한 데다 실업률도 높다. 공식 실업률은 29%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높다.
알바니아 디브라 주의 길거리 곳곳에는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일이 없어 빈둥대는 이들이라고 현지인이 설명했다.
한국 월드비전은 알바니아의 디브라와 리브라즈드 두 지역 아동 8000여명을 결연해 돕고 있다. 현지 본부를 통해 아이들을 보호 및 관리, 지원하는데 이 본부가 지역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한다.
월드비전은 각종 지원과 섬김을 통해 예수의 사랑을 몸으로 전한다. 디브라 주의 중심도시 페슈코피에 있는 월드비전 알바니아 페슈코피 본부 책임자 미란다씨는 "우리는 그저 밥 먹기 전에,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할 뿐인데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아이들이 부모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교육아동결연사업 분야에서 7년간 일하고 있는 발렌티나(37·여)씨는 자신도 월드비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며 "어릴 때 가정 폭력으로 자괴감에 빠져 살았는데 월드비전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간증했다.
페슈코피(알바니아)=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밀알의 기적] 열 살 아이가 크롬 채취해 버는 돈으로 세 식구 생활
입력 2017-03-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