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명이 났어요. 배우가 작품에 완전히 몰입해 작업한다는 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죠. 그 재미는 아무나 못 느끼는 거예요. 근데 다시 하라면 못 하겠어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완주했다’는 느낌이 강해요.”
‘해빙’은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한 남자의 심리를 치밀하게 좇는 영화에서 배우 조진웅(본명 조원준·41)은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우연히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 내시경 전문의 승훈 역을 맡아 인물의 감정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나갔다. 이혼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남자의 무기력함부터 미스터리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혼란, 불안, 공포까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해빙’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신명이 났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희열과 재미를 느꼈다는 것이다. 굉장한 성취감이 있었지만 그걸 이뤄내기까지의 과정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조진웅은 “막상 표현하려니 인물이 너무 난해하더라.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보통의 캐릭터는 설정이 딱 제시돼 있거든요. 근데 승훈은 (인물의)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은 리액션들이 나왔죠. 쉽지 않았지만, 재미있었어요.”
시종 날 서 있고 예민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 감량도 했다. 좋아하는 술은 끊지 못했어도 안주는 샐러리로 대체했다. 조진웅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해빙’은 꼭 그래야 했다”며 “연기를 미친 듯이 잘해서 (연기로) 보완할 수 있으면 그냥 하겠지만 그만큼 자신감이 없으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살을 뺀 거다. 근데 두 번 하라면 못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된 여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함께 해준 스태프들 덕이었다. “예민한 작업이었기에 스태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팀워크가 있으니까 가능할 거라고 믿었죠. 감독과 팀원들에 대해 ‘다 내 편’이라는 신뢰가 있었어요. 그게 아니면 다 무너지니까.”
촬영을 마친 뒤에는 누구든 불러 모아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 시간들이 그를 다시 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오늘은 딱 맥주 500㏄ 한 잔만 하자’고 해놓고 먹다보면 양이 어마어마해져요. 작업 얘기하다 보면 이런저런 공통의 화두가 생기잖아요. 시국 얘기에 뜨거워지기도 하고(웃음).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는 거죠.”
2004년 데뷔해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조진웅은 드라마 ‘시그널’(tvN·2016)로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영화 ‘암살’(2015) ‘아가씨’(2016) 등이 연달아 흥행하며 인기는 더 치솟았다. 떠들썩한 반응에도 그는 묵묵히 제 길을 걷는다. 부지런히 작품을 찍는 게 자신의 본분이니까.
올해 차기작 ‘보안관’ ‘대장 김창수’가 개봉을 줄줄이 앞뒀다. 요즘은 ‘공작’ 촬영에 한창이다. ‘다작 배우’로 소비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매 작품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그다.
“고민은 항상 합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집중하고, 긴장하는 것이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예요. 그게 힘들면 그만해야죠. 그만 두는 순간까지는 계속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전쟁이지만, 그렇게 살아야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조진웅 “전쟁같은 배우의 삶, 그래도 치열하게” [인터뷰]
입력 2017-03-08 07:00 수정 2017-03-08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