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수사의 출발점이 뭐냐. 바로 ‘휴대전화를 찾으라’는 거예요.”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 3일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휴대전화만 제대로 압수하면 수사 토대를 닦는 데 요긴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90일간의 특검 활동에서도 압수된 휴대전화에서 나온 각종 정보와 통신내역은 수사 전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휴대전화를 우선 확보하려는 수사팀과 이를 인멸하려는 수사 대상자들 간 밀고 당기기도 이어졌다.
특검은 수사 준비 단계부터 ‘모바일 통합 분석 시스템(MIDAS)’ 등 디지털 포렌식(증거 분석) 장비를 대거 갖춰놓는 등 휴대전화 분석에 공을 들였다. 청와대 내부부터 문화·체육계와 학계, 의료계까지 뻗친 ‘최순실 라인’을 재구성하는 작업에는 ‘트레이서 프로그램’이 활용됐다. 전화통화 빈도와 통화 시간의 유사성, 연결 우선순위 등 정보의 알고리즘을 분석해 일종의 인맥 지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특검 관계자는 “알고리즘 분석을 하면 장비 스크린에 관계도가 그림처럼 쫙 뜬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이런 분석을 통해 수사 대상자들이 사용한 수많은 차명폰의 존재를 파악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가 차명폰으로 지난해 4월 18일∼10월 26일 모두 573차례 통화한 사실도 확인했다. 지난해 10월 독일에 있던 최씨의 요청에 따라 언니 최순득씨가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의 차명폰으로 박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윤 행정관 명의의 차명폰 여러 대 중 박 대통령과 최씨가 지속적으로 통화한 전화번호를 특정했다고 한다.
특검이 마지막 순간까지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시도한 주요 이유도 청와대 내부에 보관돼 있는 휴대전화 실물 확보를 위해서였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전화기에 저장돼 있던 35시간 분량의 녹음파일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자택에서 압수된 6대의 휴대전화에 담겼던 기록 등도 수사의 주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의료용품 업체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박채윤씨의 휴대전화에 녹음된 안 전 수석과의 통화 내용은 두 사람 간의 뇌물 거래 혐의를 드러내는 단초가 됐다. 이용복 특검보는 “휴대전화가 매우 중요한 증거물이 됐다.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작은 컴퓨터에 해당하다보니 상당한 정보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연루자들이 휴대전화와 그 속의 정보를 없애려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안 전 수석 집에서 나온 문건에는 ‘휴대전화 우측 상단 3분의 1 지점을 집중 타격해 완전히 부수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복원 불가능’ 등의 인멸 지침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휴대전화 폐기를 종용한 혐의도 받는다.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는 별칭까지 붙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압수 전 기존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기민한 대응을 보였다. 수사팀이 확보한 두 사람의 휴대전화는 통화 기록이나 문자메시지 등이 거의 없는 ‘깡통폰’이었다고 한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6일 “수사 전문가답게 뭐가 약점이 될지를 알고 대처한 것”이라고 전했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특검 수사결과] 휴대전화가 최고 증거물… 분석하면 단서 술술∼
입력 2017-03-07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