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수사결과] 휴대전화가 최고 증거물… 분석하면 단서 술술∼

입력 2017-03-07 05:02
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박영수 특별검사의 국정농단 의혹 수사 결과 발표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김지훈 기자

“특수수사의 출발점이 뭐냐. 바로 ‘휴대전화를 찾으라’는 거예요.”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 3일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휴대전화만 제대로 압수하면 수사 토대를 닦는 데 요긴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90일간의 특검 활동에서도 압수된 휴대전화에서 나온 각종 정보와 통신내역은 수사 전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휴대전화를 우선 확보하려는 수사팀과 이를 인멸하려는 수사 대상자들 간 밀고 당기기도 이어졌다.

특검은 수사 준비 단계부터 ‘모바일 통합 분석 시스템(MIDAS)’ 등 디지털 포렌식(증거 분석) 장비를 대거 갖춰놓는 등 휴대전화 분석에 공을 들였다. 청와대 내부부터 문화·체육계와 학계, 의료계까지 뻗친 ‘최순실 라인’을 재구성하는 작업에는 ‘트레이서 프로그램’이 활용됐다. 전화통화 빈도와 통화 시간의 유사성, 연결 우선순위 등 정보의 알고리즘을 분석해 일종의 인맥 지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특검 관계자는 “알고리즘 분석을 하면 장비 스크린에 관계도가 그림처럼 쫙 뜬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이런 분석을 통해 수사 대상자들이 사용한 수많은 차명폰의 존재를 파악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가 차명폰으로 지난해 4월 18일∼10월 26일 모두 573차례 통화한 사실도 확인했다. 지난해 10월 독일에 있던 최씨의 요청에 따라 언니 최순득씨가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의 차명폰으로 박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윤 행정관 명의의 차명폰 여러 대 중 박 대통령과 최씨가 지속적으로 통화한 전화번호를 특정했다고 한다.

특검이 마지막 순간까지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시도한 주요 이유도 청와대 내부에 보관돼 있는 휴대전화 실물 확보를 위해서였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전화기에 저장돼 있던 35시간 분량의 녹음파일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자택에서 압수된 6대의 휴대전화에 담겼던 기록 등도 수사의 주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의료용품 업체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박채윤씨의 휴대전화에 녹음된 안 전 수석과의 통화 내용은 두 사람 간의 뇌물 거래 혐의를 드러내는 단초가 됐다. 이용복 특검보는 “휴대전화가 매우 중요한 증거물이 됐다.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작은 컴퓨터에 해당하다보니 상당한 정보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연루자들이 휴대전화와 그 속의 정보를 없애려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안 전 수석 집에서 나온 문건에는 ‘휴대전화 우측 상단 3분의 1 지점을 집중 타격해 완전히 부수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복원 불가능’ 등의 인멸 지침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휴대전화 폐기를 종용한 혐의도 받는다.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는 별칭까지 붙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압수 전 기존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기민한 대응을 보였다. 수사팀이 확보한 두 사람의 휴대전화는 통화 기록이나 문자메시지 등이 거의 없는 ‘깡통폰’이었다고 한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6일 “수사 전문가답게 뭐가 약점이 될지를 알고 대처한 것”이라고 전했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