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구 평천로 부평문화예술학교를 최근 찾았다. 상기된 표정의 두 클라리네스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올해 각각 대학 편입과 입학에 성공한 김유경(24·여) 나규희(19·여)씨다. 김씨는 발달장애(1급), 나씨는 뇌병변(1급)과 시각(3급)장애를 갖고 있지만 음악은 두 사람의 인생에서 장애를 잊게 해줬다.
나씨 어머니 서기원(48)씨는 “규희는 양쪽 팔과 다리의 길이도 다르고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도 약해서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아이였다”면서 “클라리넷을 만난 뒤 모든 것을 하나씩 이겨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 어머니 이명숙(56)씨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유경이가 피아노 의자엔 엉덩이에 본드를 붙인 듯 앉아 있었다”면서 “중학교 1학년 때 클라리넷을 잡은 뒤로는 음악에 대한 목표가 더 확실해졌다”고 전했다.
대학은커녕 중·고등학교를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해보였던 아이들이었지만 2011년 9월,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이사장 최공열)가 문화예술학교를 개교하며 앙상블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게 전환점이 됐다. 김씨와 나씨는 참빛 앙상블의 창단 멤버로 만나 클라리네스트로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먼저 대학의 문을 연 것은 김씨였다. 그는 2015년 백석예술대 음악학과에 일반전형 합격자로 이름을 올렸다. 1급 발달장애인으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거리 등하교에 대한 우려와 달리 김씨는 엄마와 함께 등교한 지 이틀 만에 ‘독립’을 선언했다. 전에 없던 자신감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고 강의 시간엔 맨 앞에 앉아 학구열을 불태웠다. 어머니 이씨는 “음악을 향한 열정이 낳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회상했다.
2년제 과정을 마무리하던 지난해 말 김씨는 가족들에게 두 가지 도전을 선언했다.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과 졸업연주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탈락하면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한 가족들의 만류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열살 때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간 후 집안에서 홀로 키워 온 신앙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지난해 12월엔 “도전 성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며 엄마 아빠도 전도했다. 결국 이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대입보다 훨씬 어렵다는 편입에 성공했고 졸업생 200여명 가운데 9명에게만 주어지는 졸업연주 무대에 섰다. 엄마 아빠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나씨의 입시 과정은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신체의 좌우 균형이 흐트러져 있는 상황이어서 물리치료와 운동치료를 병행하며 입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도전정신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방과 후 밤 11시까지 연습을 하는 강행군을 꿋꿋하게 이겨낸 그의 도전은 지난달 2일 ‘한세대 예술학부 음악학과 합격’이라는 열매를 낳았다. 어머니 서씨는 “연습량이 얼마나 많았는지 클라리넷을 연주할 때마다 입술이 부어올랐고 입안도 성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두 사람이 든든한 동행자였던 엄마를 위해 클라리넷을 들고 나란히 섰다. 고요하던 연습실에 멘델스존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울려 퍼지자 어머니들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연주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고 당차게 얘기하는 나씨를 바라보던 김씨가 맞장구를 쳤다. “행복을 주는 행복한 클라리네스트들, 기대해주세요.”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1급 장애 녹인 두 여성 집념의 선율… 대학 문을 연 장애인 클라리네스트 김유경·나규희 씨
입력 2017-03-07 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