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무숙] 남성과 함께하는 여성의 날

입력 2017-03-06 17:41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08년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리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기본권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유래됐다. 1975년 유엔에서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각국에서 이날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권익은 그동안의 법·제도적 발전에 힘입어 상당히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높은 교육 수준에 걸맞지 않게 독박육아와 경력단절로 표현되는 여성들의 고용상 낮은 지위, 심각한 가정폭력, 성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들 혼자의 힘이 아닌 남성들의 이해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2000년대 들어 유엔과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들은 성평등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역할과 참여가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반폭력운동을 남성들이 주도하는 모임이나 활동이 활발해진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89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 공대에서 한 남학생이 14명의 여학생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사건 이후 여성에 대한 폭력 추방에 남성이 앞장서자는 취지로 하얀리본운동(White Ribbon Campaign)이 펼쳐졌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성폭력 사건과 같은 문제에 남성들이 연대하고 동참하는 움직임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두 번째는 남성도 자녀 양육과 가정생활에서의 참여 또한 책임이자 권리로 인식하자는 흐름이 있다. 여성은 가사와 양육을 책임지고, 남성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을 벗어나 아버지의 자녀 양육 참여를 통해 남성성을 재규정하는 동시에 아동과의 긍정적 관계 형성을 통해 아동의 복리도 증진시키자는 것이다. ‘라떼대디’로 표현되는 스웨덴 아빠들의 모습은 남성이 자녀 공동 양육자로서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온 정부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된 결과다. 총 480일의 육아휴직 기간 중 3개월은 다른 부모에게 양도할 수 없는 할당기간으로 두었고, 부부가 똑같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현금으로 평등 보너스도 지급한다. 이는 남성들로 하여금 돌봄노동을 통해 새로운 남성성을 찾고 궁극적으로는 성평등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

세 번째 중요한 흐름은 유아원에서부터 중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 속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의 모든 불평등 문제 기저에는 남녀 역할에 대한 강고한 고정관념이 작용한다고 보고 그러한 인식을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남아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는데 한 예로 독일의 경우 기존 ‘소녀의 날’ 행사와 더불어 ‘소년의 날’을 새로이 지정, 다양한 직업체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성별 분업에 대한 인식과 틀을 벗어나 자신의 잠재력의 폭을 넓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학생들을 과학 분야로 유도하기 위해 정부 주관으로 ‘Girls’ Day’를 운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화는 남녀 모두에게 불편함을 준 성별 고정화의 틀을 깨고 여성과 남성이 공존·상생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낸다. 젠더 문제를 야기하는 전반적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남성들의 역할이 절실한 때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여성 혼자 외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민무숙 한국양성평등 교육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