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건강] 오늘밤엔 제발 자고 싶은 사람들… 한국인 수면건강 ‘빨간불’

입력 2017-03-07 05:00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그만큼 일생에 있어 수면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각종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환자가 이미 72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인의 수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수면장애 진료 환자는 72만1045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 52만5659명에서 5년 사이 37.2%(19만5386명) 증가했다.

수면장애는 단순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뿐 아니라 충분히 잤는데도 낮에 심하게 졸리는 ‘과다수면증’(기면증 포함), 코골이와 동반돼 잠자는 중 숨이 멈춰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무호흡증’, 잠들 무렵이면 다리가 쑤시거나 저리는 ‘하지불안증후군’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다양한 질환을 포괄한다.

대한수면학회 김성완(경희의료원 이비인후과 교수) 회장은 “이전에는 수면장애를 잘 모르거나 또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면건강을 해치는 사회적 환경이 늘어난 것도 한몫한다. 직장·가정에서의 스트레스,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이른바 ‘빛 공해’, 커피 등 카페인 음료·알코올 섭취, 비만의 증가 - 모두 현대인의 잠을 방해하는 적이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수면장애는 전 국민의 10∼20%가 앓는 매우 흔한 질환인데도 관련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 제대로 된 진단·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숨어 있는 환자까지 감안하면 국내 잠재적 수면장애 환자는 공식 집계치의 10배쯤인 7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신에게 밤새 무슨 일이?

수면장애는 연령별로 특징적인 면을 보인다. 서울스페셜수면의원이 지난해 내원한 1631명을 분석한 결과 0∼19세 환자(129명)의 48%는 기면증 등 과다수면증으로 진단됐다. 또 20, 30대(609명)의 37%는 수면무호흡증과 하지불안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40, 50대 남성(323명)의 80%는 수면무호흡증, 여성(236명)의 78%는 불면증을 호소했다. 60대 이상(334명)의 63%는 잠꼬대와 렘수면행동장애로 병원을 찾았다.

기면증은 낮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는 병이다. 수면과 각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히포크레틴이 뇌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생긴다. 홍 교수는 “운전이나 대화 중, 또는 길을 걷거나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슬립어택(Sleep attack) 증상이 짧으면 수분, 길게는 20∼30분 지속되는 게 특징”이라며 “길을 걷다 전봇대나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낮에 심하게 졸린 증상을 병으로 생각지 않고 의사도 주간 졸음증에 대해 잘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진단율이 낮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양쪽 다리, 특히 종아리 부위에 불편한 느낌(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스물거림, 옥죄는 느낌, 저릿저릿함 등)으로 가만히 누워 잠자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잠자는 도중 자주 깨게 되고 결국 수면 부족으로 하루 종일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많다. 홍 교수는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 발이나 다리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하지불안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80% 이상이 잠자면서 다리를 떨거나 갑작스레 움찔거리는 주기성 사지운동증 증상을 보인다.

서울스페셜수면의원 한진규 원장은 “20, 30대 젊은 여성들의 경우 지나친 다이어트와 생리, 임신 등으로 호르몬 변화가 있을 때 하지불안증후군이 나타나며 보통 임신 후반기에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환자들은 다리의 불편한 증상으로 괴로워하지만 수십년간 참고 지내기 십상이다. 또 허리 디스크나 혈액순환장애, 근육통 등으로 오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면중 주기성 사지운동증은 65세 이상 노인의 30∼40%가 갖고 있다. 잠자면서 자꾸 깬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1시간에 다섯 번 이상 다리 떨림증이 있을 경우 치료받아야 한다.

수면무호흡증은 잠자는 동안 숨이 10초 이상 멈추거나 50% 이상 감소할 때 나타난다. 대개 코골이를 동반한다. 호흡이 조용히 멈추기도 하지만 ‘컥컥’ 소리를 내면서 힘들게 숨쉬거나 ‘푸푸’ 내쉬기도 한다. 본인은 잘 모르는 만큼 배우자 등 가족의 역할이 진단에 매우 중요하다. 환자 자신은 잠에서 깨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반쯤 깬 상태로 밤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심한 졸음이나 피로감, 기억력 및 인지 능력 저하를 초래한다.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신철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안전사고 위험은 물론 장기적으론 고혈압 심근경색(급사) 뇌졸중 우울증 비만 치매 위험을 높이는 만큼 제때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50대의 경우 치료받지 않으면 치매 위험이 6배 높아진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홍승봉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을 방치하면 10년 뒤 사망률에서 30%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무조건적 수면제 복용 금물

가장 흔한 수면장애인 불면증은 잠에 들기 어렵거나 중간에 자꾸 깨거나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다. 이런 상태가 1주일에 세 번 이상 1개월 넘게 지속되면 단기 불면증, 3개월을 넘으면 만성 불면증에 해당된다. 홍 교수는 “수면무호흡증 등 다른 수면장애나 우울증 불안증 집착증 같은 정신질환, 위식도역류 천식 심부전 폐질환 암 등 내과·신경과적 질환, 약물 및 알코올 등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불면증은 원인 질환을 먼저 정확히 진단해 치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졸피뎀 등 수면제 사용과 관련해 이화여대 목동병원 이향운 수면센터장은 “수면제는 일시적으로 잠을 자게 할 수는 있지만 불면증의 원인이 되는 수면무호흡증을 오히려 크게 악화시킬 수 있고 약물 의존성에 빠져 불면증을 만성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면제는 간헐적으로 불면증이 매우 심할 때 소량만 복용해야 하며 4주 이상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이밖에 꿈속의 내용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렘수면행동장애(자다가 갑자기 주먹질이나 발길질 등), 자다가 일어나 걸어다니거나 집밖으로 나가는 등의 행동을 하는 몽유병, 비명과 함께 거친 호흡을 하며 과도한 흥분 상태를 보이는 야경증 등도 수면장애에 해당된다. 가족이나 주변사람이 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전문가 진단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고 치료받는 것이 좋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