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투명한 시스템 경영 시도하는 대기업들, 신뢰 얻을까

입력 2017-03-06 00:00

국내 주요 그룹들이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에서 벗어나 시스템 경영을 잇달아 시도하고 있다. 기업마다 ‘사회적 가치 창출’ ‘자금운용 투명화’ ‘준법경영’ 등 용어는 다르지만 과거와 단절하고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또 일각에선 대기업과 오너가 정경유착의 희생양이 되는 걸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엿보인다.

5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3대 핵심 계열사는 오는 24일 주주총회를 열고 정관 개정안을 처리한다.

정관 개정안에는 기업 본연의 가치인 ‘이윤추구’보다 행복추구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전에는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해 충분한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이를 ‘회사는 이해관계자 간 행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로 바꾼다.

정관 개정은 “사회 구성원의 행복 추구를 도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최태원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 관계자는 “이윤추구를 하되 사회 전반에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나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번 정관 변경으로 SK그룹 전반의 경영 형태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10억원 이상 기부금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하도록 결정했다. 특정인이 부당한 지원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없앤 것도 이사회를 통해 시스템에 의한 경영에 힘을 싣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향후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통해 경영 전반의 의사결정을 할 계획이다.

롯데는 최근 조직 개편을 하면서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신설했다. 준법경영 및 법무,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다른 사장단 인사는 모두 신동빈 회장을 잘 보필할 수 있는 인물로 채워졌지만 컴플라이언스위원장은 외부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독립적인 지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대표 그룹들이 시스템 경영을 강조하는 건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사태를 두번 다시 겪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부당한 요구를 해오더라도 이에 응할 수 없도록 시스템으로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등 특정인에게 결정권이 있으면 외부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이사회 등 공식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적법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응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이 아무리 시스템 경영으로 발버둥쳐봐야 통치권자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정경유착은 끊을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대기업 관계자는 “국민들 사이에선 사건이 잊힐 만하면 원상복구될 것이라는 불신이 높다”면서 “결국 대통령 등 정치권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기업들도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