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나에 대한 도청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워터게이트급 범죄라고 비난했지만 근거는 전혀 내놓지 않았다. 측근들이 잇따라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곤란해지자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물타기’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는 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끔찍하다! 오바마가 (지난해 대선) 승리 직전 트럼프타워에서 내 전화를 도청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이건 매카시즘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현직 대통령이 선거 전에 후보를 도청하는 게 합법인가”라고 물으며 “닉슨의 워터게이트나 다름없다. 나쁜(혹은 역겨운)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도청 사실을 변호사가 입증할 수 있다”고 했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오바마의 대변인 케빈 루이스는 “오바마나 당시 백악관 관리가 트럼프에 대한 감시를 지시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전직 고위 관료도 CNN방송 인터뷰에서 “그런 일은 없었고 트럼프의 주장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관련 의혹으로 낙마한 데 이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도 러시아 스캔들로 사퇴 공세에 시달리자 트럼프가 뜬금없는 도청 주장으로 역공에 나선 모양새다. 트럼프는 자신의 측근들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정보를 정보기관에 남아 있는 오바마 정권 사람들이 언론에 흘린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내통은 없고 정보 유출이 문제”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를 ‘관심 돌리기 대장(Deflector-in-Chief)’으로 지칭했다. 저명한 소설가 스티븐 킹은 트럼프를 조롱하는 트윗을 올렸다. 킹은 “오바마가 작업복을 입고 직접 트럼프 전화에 도청기를 달았다. 그 사이 부인 미셸이 망을 봤다. 오바마는 딸기아이스크림도 훔쳤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백악관을 떠나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바마는 가위를 든 채 벽장 속에 있다!”고 썼다.
앞서 트럼프는 민주당 지도부가 러시아 측과 접촉한 사진·기사를 트위터에 올리며 민주당을 공격했다. 민주당도 러시아 인사와 만났으니 내통한 거 아니냐는 반격이다. 트럼프는 지난 3일 트위터에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러면서 “슈머와 푸틴의 연계에 대해 즉각 수사해야 한다. 완전한 위선자!”라고 적었다.
트럼프는 이어 러시아대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던 펠로시 원내대표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사를 링크하면서 “두 번째 수사를 요구한다”고 썼다.
슈머와 펠로시도 트윗으로 반박했다. 슈머는 “나와 푸틴의 접촉은 2003년 언론이 완전히 볼 수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며 “당신과 당신의 팀은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펠로시도 “트럼프는 언론에 사진이 찍히는 공식 회의와 밀폐된 비밀회의의 차이를 모른다”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트럼프 “오바마, 내 전화 도청”… 러시아게이트 물타기
입력 2017-03-0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