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거친 행태에 한국 내 친중 목소리 설자리 없다

입력 2017-03-06 05:02
5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본점 화장품 코너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관광에 대해 전면적인 통제를 하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윤성호 기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한반도 배치를 겨냥한 중국의 거친 행태가 도리어 중국의 외교적 입지를 좁힐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중국의 무차별 보복이 노골화될수록 한국 각계에서 중국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 ‘신(新)밀월’로 불릴 정도로 가까워진 데는 중국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일본에 두 차례 강도 높은 보복조치를 취했다. 2010년 일본 순시선의 중국 어선 선장 체포 사건 때는 대일(對日) 희토류 수출을 막았다. 2012년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 조치에는 반일 정서를 부추기는 식으로 대응했다. 중국 전역에서 반일 시위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이런 보복조치 이후 일본에서 ‘친중(親中)파’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일본은 민주당 집권기인 2009∼2012년 중·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지만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친미 일변도로 외교노선을 바꿨다. 그 배경에는 중국식 ‘대국(大國)주의’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5일 “중국이 센카쿠열도를 이유로 일본에 보복조치를 쏟아냈던 것이 결국 일본 내 친중파의 몰락과 아베 정권의 출범으로 이어졌다”면서 “일본에서는 보수이면서도 반미 성향의 인사가 상당수 있었으나 이들 역시 일제히 친미 일색으로 돌아섰다. 중국 경계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당시 일본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최근 우리에 대한 사드 보복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수위가 높았다”며 “일본 내에서 반중 정서와 함께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아베 총리 집권에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베 총리는 원래 친미였지만 중국의 위협 때문에 미·일동맹 강화노선이 더욱 탄력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심화된 최근에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중국이 중화주의, 대국주의를 버리지 않는다면 한국이 갈 길은 한·미동맹 강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가 파탄에 이르면 그 반동으로 한·미·일 3각 안보 공조가 가속화돼 동아시아에서의 대중(對中) 포위망 완성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는 중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일각에서는 ‘한·미·일 대(對) 북·중·러’의 ‘신(新)냉전’ 구도 역시 거론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러 관계도 유동적이다. 경우에 따라 중국만 ‘왕따’가 될 수도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전략적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과 적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한국을 옥죈다면 한국 국민은 ‘중국이 우리 사정은 전혀 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중국 외교가 이러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중국의 사드 보복은) 세계무역기구(WTO)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규정에 저촉될 수 있다. 이런 점을 보면서 중국과 얘기를 해나가겠다”면서 정부 차원의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