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분리벽 앞 ‘세계 최악의 호텔’ 개장

입력 2017-03-05 20:27
지난 3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외곽의 장벽 앞에 간판을 단 월도프호텔을 주민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위). 언론에 공개된 내부에는 감시카메라와 새총이 벽에 걸려 있는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풍자한 예술작품이 가득했다(아래). AP뉴시스

영국의 벽화가 뱅크시가 팔레스타인에 ‘세계 최악의 경관’을 가진 호텔을 세웠다고 5일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월도프(Walled Off Hotel)’란 이름을 내건 이 호텔은 팔레스타인 지역인 베들레헴 외곽에 이스라엘이 세운 장벽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10개의 객실이 있지만 높이 8m의 장벽 때문에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다. 장벽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갖가지 낙서로 가득하고, 이스라엘군의 감시탑이 객실 안까지 훤히 지켜보고 있다. 이 호텔의 위잠 살사 지배인은 “창밖 풍경이 세계 최악”이라고 말했다.

대신 호텔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풍자한 뱅크시의 새로운 벽화와 팔레스타인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하다. 한 객실 침대 맡에는 이스라엘 군인과 복면을 한 팔레스타인 투사가 베갯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또 다른 객실에는 목이 묶인 치타가 눈물을 흘리는 벽화가 있다. 식당 벽에는 CCTV 카메라와 새총, 망치가 장식돼 있고, 복도에 걸린 정물화에는 철망이 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뱅크시의 작품 ‘꽃을 던지는 투사’도 옮겨놓았다. 뱅크시는 이 호텔을 식민지 시대 영국인의 호화로운 숙소 분위기로 단장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영국이 끼친 영향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영국 가디언지는 “호텔과 저항, 예술이 하나로 결합했다”고 평했다.

뱅크시는 세계 곳곳의 담벼락에 사회고발적인 벽화를 몰래 그려 유명해진 인물이지만 아직도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화가다. 이 호텔도 뱅크시가 1년 가까이 비밀리에 준비했다. 직원들조차 지난 3일 언론에 호텔이 공개될 때까지 주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팔레스타인도 여러 차례 방문해 ‘풍선을 들고 하늘을 나는 소녀’ ‘방탄복을 입은 비둘기’ ‘군인을 검문하는 소녀’ 같은 그림을 남겼다. 영국 런던의 한 담벼락에 남긴 뱅크시의 그림이 약 20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뱅크시는 “이 호텔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단체와 무관하다”며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어느 쪽 사람이든 투숙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11일 정식 개관하는 월도프호텔의 하룻밤 숙박료는 게스트룸 기준 약 3만5000원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