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라이프] 화사한 남자들, 봄을 밝힌다

입력 2017-03-06 05:00
꽃무늬 슈트, 러플(주름) 장식이 된 셔츠, 속이 내비치는 시스루룩 등 여성복 같은 남성복이 올봄 크게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꽃 소식과 여성들의 화사한 옷차림이었다. 올해는 그 공식이 깨질 것 같다. 올봄 화사함은 여성복이 아닌 남성복에서 도드라진다. 검정 감색 회색 등 어두컴컴한 색에서 벗어나 녹색, 연분홍, 하늘색 등 산뜻한 색상의 남성복들이 매장에 등장하고 있다. 색상뿐만 아니라 속살이 내비치는 시스루, 러플(주름), 꽃무늬 등 여성복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요소들이 남성복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번 봄 남성복에 대해 "포스트모던 시대에 남성의 연약함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강인함을 포기한 남성들의 옷은 여성들의 옷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됐다. 이른바 성의 구분이 모호한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이 대세로 떠올랐다.

이지은 LF 신사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5일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과 안목이 높아짐에 따라 올봄 남성복 시장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남성복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돼 왔던 소재나 패턴, 스타일이 여성복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와의 접목을 통해 보다 화려하고 캐주얼한 느낌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그 변화는 지난가을 예고됐다. 올해 봄과 여름 유행할 남성복을 소개하는 컬렉션에서 여성복 뺨치게 예쁜 남성복이 대거 선보였다. 프랑스 파리의 남성복 컬렉션에선 여성스러운 복장들이 런웨이를 점령했다. ‘디올 옴므’는 꽃무늬가 패치워크 된 진 재킷과 바지, 망사 시스루 셔츠를 무대에 올렸다. 메종 마르지엘라도 분홍색 바지와 다양한 종류의 시스루 의상을 선보였다. 신사의 나라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폴스미스’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라 등 무지갯빛 컬러가 체크패턴으로 들어간 보머 재킷을 내놨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들의 남성복은 여성복보다도 예뻤다. 구찌의 화사한 꽃무늬 슈트는 여성들의 투피스보다 화사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분홍색 니트는 사랑스러웠다.

국내 남성복 디자이너들도 예쁜 남성복을 앞다퉈 선보였다. ‘문수권’의 권문수는 핑크 줄무늬의 슈트를 내놨다. ‘카루소’의 장광효는 레이스로 된 시스루 셔츠로 섹시함을 강조했다. ‘제이쿠’의 최진우 구연주 부부는 시스루 롱셔츠에 러플로 악센트까지 주었다. ‘김서룡옴므’의 김서룡은 단추선을 러플로 장식한 우아한 셔츠를 색상별로 선보이기도 했다. 송지오(‘송지오옴므’)의 가슴 부분에 핀턱(가는 주름)을 잡은 시스루 롱 튜닉, 신규용(‘블라인드니스’)의 목과 소매 부분에 러플 장식이 풍성한 핑크 셔츠 등은 여성들이 탐낼 만큼 예쁜 디자인이었다.

기성복 브랜드들은 디자이너 브랜드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색상의 변화가 눈에 띈다. 반하트 디 알바자 정두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올해 남성복에선 파스텔컬러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파스텔 그린, 베이지, 블루 컬러의 패션 아이템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하트 디 알바자’는 녹색 스웨이드 재킷과 핑크색 셔츠를 봄 신상품으로 내놨다. ‘빨질레리’도 피코크 그린 컬러의 스웨이드 재킷과 붉은색 스웨이드 블루종을 출시했다. 남성복에서 다양한 명도와 채도의 녹색이 많이 보이는 것은 세계적인 유행 색상으로 녹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색채 전문 기업 팬톤은 올해의 컬러로 ‘그리너리(Greenery)’를 선정했다.

정장의 선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패드를 넣어 어깨를 인위적으로 강조한 정장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갤럭시 디자인실 이현정 실장은 “정장 슈트들이 슬림한 선은 유지하지만 어깨선은 딱딱하지 않고, 부자재를 걷어내 가볍게 착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기본 정장 외에 줄무늬 정장이 필수 아이템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디자이너들은 꼽았다.

감색이나 짙은 회색 정장에 익숙했던 중장년들에게는 남자 옷도 여자 옷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젠더리스룩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후줄근한 아저씨 패션을 벗어나 젠더리스룩으로 트렌디한 멋쟁이로 변신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장광효씨는 “젠더리스룩의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셔츠나 양말 등 소품을 밝은 색으로 입어서 익숙해지면 겉옷으로 면적을 넓혀 가보라”고 조언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