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결국 석방… 김정남 암살 ‘진상’ 파묻힐 우려

입력 2017-03-04 00:00
김정남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됐던 이정철이 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세팡경찰서에서 석방된 후 이민국으로 가기 위해 호송차에 타고 있다. 이정철은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채 기소 시한을 넘겨 석방됐고 체류 비자가 없어 이민법 위반으로 추방당했다.AP뉴시스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이 3일 신병이 확보된 유일한 북한 국적 용의자 이정철(47)을 석방했다. 사건에 직접 개입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명분이지만 북한 측에서 끈질기게 요구하던 ‘석방’이 사실상 받아들여진 모양새다. 유효 비자가 없던 이정철이 곧장 북한으로 추방당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불안했던 양국 관계도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 더 스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50분쯤(현지시간) 이정철이 세팡경찰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염을 깎지 않아 초췌했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방탄조끼까지 착용한 그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호송용 경찰차에 올라타 이민국으로 향했다. 추방절차를 거친 그는 이날 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통해 말레이시아를 떠났다.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간다는 사실 외에는 동선이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이정철은 사건 발생 나흘째인 지난달 17일 쿠알라룸푸르 자택에서 검거됐다. 수사 당국은 사건 현장인 공항 CCTV를 분석해 그가 도주한 북한 출신 용의자를 공항까지 태워다 준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직접 개입한 정황이나 물증을 밝혀내진 못했다. 유효한 비자 없이 현지 건강식품 업체에 위장 취업했던 이정철은 이민법 위반 혐의로 추방됐다.

북한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이정철이 현장인 말레이시아를 벗어나면서 진상 규명은 북한의 ‘계산’대로 유야무야되는 모습이다. 수사 당국은 북한 측에 용의자 이지현(33) 홍송학(34) 오종길(55) 이재남(57)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현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송(44)과 제임스로 불리는 이지유(30) 등에 대한 신병 확보 또한 어려울 전망이다.

현지 경찰은 북한대사관에 은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에 대해 3일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그에게 수사에 협조할 시간을 줬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영장 발부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로선 지난 1일 기소된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 도안 티 흐엉(29)의 사법 처리만 가능한 상황이다. 두 사람이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이번 수사는 용두사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건 발생 초기 강력한 의지를 불태웠던 수사 당국도 사건의 북한 연관성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남은 단서는 이제 김정남의 시신뿐이다. 현지 언론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망자의 시신 복부와 왼쪽 팔에 새겨진 문신이 2013년 보도를 통해 알려진 김정남의 문신과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잉어 두 마리를 낚아 올리는 문신이 신원 파악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문서나 구두 진술 등 2차 증거나 치아 기록 등 법의학적 판단도 법정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근거로 인정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