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나라 창피해서 살 수가 없네.”
창피(猖披)는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하는 것, 또는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猖은 옷을 입고 마무리를 하지 않은 듯 흐트러져 있다, 미쳐 날뛴다는 뜻의 글자입니다. 전염병이 창궐(猖獗)한다고 할 때 쓰이지요. 披는 손으로 옷을 풀어헤치는 모양의 글자로 펼친다, 벌인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결혼식 등이 끝나고 음식을 나누는 걸 피로연(披露宴)이라고 하는데, 원래 한데에서 벌이는 연회를 이르는 말입니다.
창피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의 ‘이소’(離騷·소란한 데를 떠남)라는 시에 나오는 말입니다. 굴원이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내쳐진 뒤 시름을 노래한 것이지요. 중국 역사상 폭군을 들자면 상징적으로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을 말합니다. 나라가 망해 궁궐을 급히 빠져나가는 그들의 꼴을 굴원이 이렇게 묘사합니다. ‘어찌 걸과 주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허둥대면서 군색한 걸음으로 달아날 지름길만 찾는가’(何桀紂之猖披兮 夫唯捷徑以窘步·하걸주지창피혜 부유첩경이군보). 백성은 안중에 없고 향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다 최후의 순간에 내빼는 걸과 주가 체통을 잃고 당황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큰 창피를 안기고도 마음에 거리낌을 못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인간만이 진정 부끄러움을 안다는데….
글=서완식 어문팀장, 그래픽=전진이 기자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옷도 제대로 못 입고 허둥대는 ‘창피’
입력 2017-03-0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