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철] 정치재판이 돼선 안 된다

입력 2017-03-03 17:40

특검 수사가 종료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심판만 남았다. 그런데 최근 탄핵심판 전 하야 문제가 갑자기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의 하야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불명예 선례를 남기는 것으로 이후 어떤 대통령도 군중의 집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대통령은 임기 동안 내란, 외환의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한 형사소추도 받지 않고 임기를 마쳐야 한다. 임기 5년은 기한의 의미도 있지만 5년 동안은 임의대로 물러날 수 없는 책무이기도 하다.

최순실 사건은 그와 몇몇 관련자들의 횡령, 사기, 이권개입 등이 본질이다. 이 상황에서 하야는 지금 거론되는 모든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온갖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하야가 아니라 계속 적극 해명해야 한다. 미국은 건국 이래 대통령이 탄핵결정으로 파면된 사례는 한 건도 없고,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역시 탄핵으로 대통령을 파면한 사례는 없다. 헌법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의미의 탄핵으로 파면한 경우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탄핵의 법적 사유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대통령을 파면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 위반의 중대성과 탄핵심판 대상의 범위 등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현재 박 대통령에게 제기되는 각종 의료 진료와 시술 등 개인의 사적 생활에 해당되는 사안들은 그 진실 여부와 합법, 불법 여부를 떠나 개인 사생활에 해당돼 탄핵심판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고도의 정책결정 실패나 오류로 인한 과실의 법적 책임도 탄핵 사유의 범위에서 기본적으로 제외된다. 즉 국가의 통치행위를 목적으로 한 정책결정과 집행의 결과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이유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만약 대통령이 정책결정과 집행의 과실로 탄핵돼 파면된다면 여기에 자리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도 이와 동일한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탄핵제도는 우선 탄핵 사유가 구체화돼 있지 않고, 이번 사안에서와 같이 피소추인인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이 결여돼 실질적인 개인 기본권 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또한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과 조사 후에 탄핵소추 절차가 진행돼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문제다. 미국의 경우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의회 조사위원회의 조사가 9개월 동안이나 진행된 뒤에 탄핵소추 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헌재의 탄핵심판은 여론과 정치적 상황에 따른 정치재판이어서는 안 되며, 순수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재판이어야 한다. 이러다가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탄핵소추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대통령중심제의 양당구도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로 민감한 사회 이슈나 정책에 대해서는 국론이 분열될 소지를 안고 있다. 여기에다 대통령 탄핵까지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큰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탄핵제도가 국회 내 다수당의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헌법수호를 위한 탄핵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들의 과도한 권력다툼으로 헌법질서를 오히려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 검토해봐야 할 시점이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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