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선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든 승복해야 한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인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비판 여론을 우려한 탓이다. 다만 큰 틀의 승복을 말하면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는 분명히 보인다.
야권 내 대세론을 형성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인과 국민의 승복을 분리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최근 “헌재가 결정하면 기각이든 인용이든 정치인은 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국민이 승복할지는 다른 문제”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기각 결정에 국민이 승복할 수 있겠나. 국민이 크게 분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지만 국민은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말 문 전 대표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할 만큼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일단 승복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왔지만 완전한 승복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주 지지층인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분노’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 대결집’을 통해 경선 승리를 노리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문 전 대표보다 수위가 더 높다. 그는 지난달 25일 촛불집회에서 “탄핵안이 기각돼도 승복할 게 아니라 국민이 손잡고 끝까지 싸워서 박근혜를 퇴진시키자”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탄핵 불복뿐 아니라 박 대통령 구속 수사를 요구하며 연일 강성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중도 표심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의 헌재 결정 승복 메시지는 대동소이하다. 사법부 결정에 불복해 헌정질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헌재 결정 승복 여부에 대해 뚜렷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던 안 지사는 2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헌정질서는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모두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하고, 절차에 따라 결정이 나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도 1일 성명에서 “모든 국민이 헌법 절차에 따르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했고, 유 의원과 남 지사도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네 사람 모두 탄핵 인용을 확신하면서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바라고, 극단적 진영논리에 대한 거부감이 큰 중도 표심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자유한국당 대선 주자들은 무조건적인 승복 입장이다. 원유철 의원은 전날 “여야 대선 주자들은 대통령 자리가 아닌 대한민국을 위한 결단을 하루빨리 내려야 한다”며 “헌재 결정에 승복하자는 합동 서약식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인제 전 의원과 김관영 경북지사도 승복하겠다고 했다. 여당은 시종일관 탄핵심판이 부당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 불복을 시사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의원과 남 지사에게 각각 ‘국민통합’이라고 적힌 배지를 달아줬다. 정 대표와 주 원내대표도 ‘헌재 존중’ 문구를 새긴 배지를 가슴에 착용하는 등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깊어지는 국론 분열을 막자는 취지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정 대표는 “자유한국당은 버젓이 광장에 나가 탄핵 반대를 옹호하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도로친박당’ ‘최순실옹호당’임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맹비난했다. 주 원내대표는 “여야 대선 주자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서 돌아와 헌재 결정 승복을 설득해야 한다”며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기를 거듭 촉구한다”고 말했다.
글=최승욱 김경택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헌재 결과 승복하자] 여야 대선 후보들도 “승복해야” 기류지만…
입력 2017-03-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