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나라 망치는 ‘불복’ 목소리

입력 2017-03-02 17:54 수정 2017-03-02 21:27

박근혜 대통령 파면 여부를 가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임박하면서 광장의 갈등이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不服) 선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 “악마의 재판관”처럼 헌재를 압박하는 과격한 언사도 나오고 있다. 학자와 정치 원로들은 “반(反)헌법적인 행위”라고 우려하며 승복(承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는 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오만한 법관(헌법재판관)들에게 무조건 승복합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선량한 국민이란 말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2일 탄핵심판 변론서는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해주면 시가전(市街戰)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며 탄핵안이 인용되면 내란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며 헌재를 압박했다.

탄핵반대 집회를 이끌고 있는 주요 인사들도 불복 의사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정광용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대변인은 25일 집회에서 “악마의 재판관 3명 때문에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강일원 탄핵심판 주심에 대해 “당신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말도 나왔다.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27일 ‘신의 한 수’라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팟캐스트)에서 이 권한대행의 집 주소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4일 박영수 특별검사의 집 주소를 공개하고 자택 앞 ‘야구방망이 시위’를 주도했다. 당시 장 대표는 “이제는 말로 하면 안 된다. 이 ××들은 몽둥이맛을 봐야 한다”며 박 특별검사를 위협했다.

야권에서도 헌재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을 내비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16일 한 토론회에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하자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헌재 결정 불복을 시사했다.

학계는 불복 발언이 이어지는 현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적으로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불복을 선동하는 것은 반헌법적 행위이며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헌재 결정은) 국민적인 합의인데 법리를 따지기 전에 이런 합의를 따르지 않으면 국가 질서가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헌재 결정 승복을 강조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탄핵심판이라는 제도가 있는 한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재 결정 이후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한국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헌재 결정 이후 사회 갈등을 봉합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갈등을 극복하고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