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들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원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무상 현금 지원이 가난한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는 주장과 달리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 있던 이들이 지원받은 돈으로 생산수단을 구비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BBC방송은 1일(현지시간)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진행 중인 ‘실험’을 소개하며 현금 직접 지급 방식이 가장 광범위하게 연구된 사회개발 프로그램의 하나로 매우 효과적이라는 활동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케냐에서 활동하는 자선단체들이 케냐 서부의 빈민촌 카코조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고 이 현금을 쓰고 싶은 곳에 쓰도록 했는데 결과는 예상외였다. 기존에는 돈이 부족해 집 지붕의 구멍을 조잡하게 때우는 데 그쳤던 마을 주민들은 받은 돈으로 양철지붕을 얹었다. 반년마다 시달렸던 초가지붕 수리에서 해방됐을 뿐만 아니라 빗물까지 저장할 수 있게 됐다. 마을 주민 에밀리 오티에노는 BBC에 “지붕을 고치는 데 쓸 돈을 학교 등록금을 내는 등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오티에노는 여분의 자금으로 식용유를 사서 되파는 소매업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마을의 빈농이었던 조지프 옴빔보 냐콰카는 그의 아내 베아트리스와 함께 종자와 비료를 구매해 옥수수 농사를 지었는데 가족이 먹고도 수확량이 남아 내다팔 수 있게 됐다고 방송에 귀띔했다. 옴빔보는 지원금으로 수소와 송아지를 각각 2마리씩 사들였을 뿐만 아니라 철제 기둥을 세워 집을 고쳤다. 그러고도 남은 돈으로 자녀의 등록금을 냈고, 30년 전 결혼식 당시 마련할 수 없어 미뤄 뒀던 신부 지참금을 처가에 건넸다.
영국 국제개발부가 케냐 북부와 북동부의 사막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현금 지급 결과도 카코조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현지 주민 대부분이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가축을 키워도 제값을 못받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와지르 마을에서 소를 키우는 압둘라히 아브디는 BBC에 “과거 100여 마리의 소를 키웠지만 최근 가뭄으로 대부분 말라죽어 몇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현금 구호가 아니었다면 아이들 등록금과 생계비 충당을 위해 가축들을 또 내다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과 정부기관, 민간 구호단체들은 저개발국 빈곤 탈출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지만 빈곤의 대물림은 계속됐다. 이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집을 잃은 난민에게 천막을 지어주던 구호활동은 최근 현금 직접 지급 방식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전 세계적 ‘기본소득’ 논의와 맞물려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하는 자선단체도 점점 늘어났다.
현금 지급 방식 구호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 해외개발연구소의 프란체스카 바스타글리도 BBC에 “현금 지급이 빈민 자녀들의 학교 출석률 증가로 이어졌다”면서 “빈민들의 의료기관 방문이 늘어나고 가계저축도 증가할 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자산에 투자하는 예가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구호도 현금으로… 케냐 빈민촌의 기본소득 실험
입력 2017-03-03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