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채찍에… 생보 빅3 “자살보험금 지급” 백기

입력 2017-03-03 00:00



생명보험업계 ‘빅3’(삼성·한화·교보생명)가 금융감독원의 초강수에 ‘백기’를 들었다.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재해사망특약보험금)을 모두 주기로 했다. 금감원은 영업 일부정지, 대표이사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결정하면서 이들을 압박해 왔다. ‘소멸시효가 경과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버티던 세 회사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하면서 최종 제재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도 생겼다.

삼성생명은 2일 오전 긴급이사회를 열고 자살보험금 미지급액 전액을 지연이자까지 합해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급하는 건수는 3337건으로 1740억원 규모다. 지난 1월 부분지급을 발표할 때 자살 방지를 위해 기부하기로 했던 200억원도 지급액에 포함됐다.

한화생명은 3일 열릴 정기이사회에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긴급 안건으로 올렸다. 교보생명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23일 갑작스럽게 자살보험금 전건 지급을 결정했었다.

당시 금감원 제재심의에서 교보생명은 비교적 가벼운 징계 수준인 ‘대표이사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이걸로 신창재 회장의 연임이 가능해졌다. 반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한층 무거운 ‘문책 경고’를 받았다. 특히 삼성생명은 주주총회 이전에 김창수 사장의 문책 경고가 확정되면 연임이 불가능해진다. 가뜩이나 미래전략실 해체 등으로 그룹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최고경영자(CEO) 공백’에 빠질 수 있다.

제재심 징계 가운데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조치 등 법인에 내려진 징계는 금융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대신 임원에게 내린 징계는 금감원의 결재에 따라 집행 여부가 정해진다. 이 과정에서 수위가 조절될 여지가 있다. 2014년 KB금융그룹 사태 때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내려진 제재 수위가 바뀐 전례도 있다.

생보 3사의 투항은 금감원으로선 상징적인 승리다. 한화생명이 자살보험금 지급 결정을 내놓으면 과거 2010년까지 재해사망보장 특약 상품을 판매한 14개 생보사가 모두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게 된다. 다만 일각에선 소멸시효가 경과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금융감독 당국이 뒤집은 전례로 남는 점을 우려한다.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재해사망과 동일시하는 것은 선의성, 윤리성을 본질로 하는 보험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금감원은 고민하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체가 움직이면 우리도 검토해봐야 되지 않겠나”라면서도 “아직까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