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빠 표심 잡아라”… 남성 육아·보육공약 쏟아진다

입력 2017-03-03 05:00

‘아빠 표심’을 겨냥한 대선 주자들의 육아·보육 공약이 유행처럼 쏟아지고 있다. 최악의 저출산 시대, 만성이 된 보육대란에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남성 유권자들의 현실이 투영된 결과다. ‘아빠휴직 보너스제’ ‘칼퇴근법’ ‘슈퍼우먼방지법’ 등 파격 공약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직장문화와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빠휴직 보너스제’를 들고 나왔다.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고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겠다는 게 주내용이다. 배우자 출산 시 유급휴일을 늘리고, 미취학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 및 유연근무제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워킹 대디(일하는 아빠)들의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남성 육아휴직과 출퇴근시간 자율조정제를 확대해 부부가 함께하는 육아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슈퍼우먼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출산 부부에게 1개월 출산휴가 의무화, 남성 육아휴직 의무 할당, 육아기(8세 이하) 근로시간 단축제 강제 등을 공약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칼퇴근법’을 공언했다. 정시 퇴근과 퇴근 후 업무지시 금지를 입법으로 강제해 퇴근 후 육아 환경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육아휴직을 최대 3년간 3년에 걸쳐 분할 사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학제 개편안과 연계해 유치원 과정(만 3∼5세)을 의무교육으로 편입하는 식으로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간 각종 정책연대를 실험했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는 육아·보육 공약에서도 ‘기업문화 환기’라는 공감대를 보여줬다. 안 지사는 육아휴직 사용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육아휴직 블랙기업’을 가려내 정부조달, 정책금융 등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남 지사는 육아휴직 인정 기관·기업을 선정해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과 함께 ‘야근 없는 날’ 확산 등을 구상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의 이런 공약에는 남성들의 육아 참여라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돼 있다.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후보들의 육아·보육 공약은 무상보육과 육아비 제공 등 국가지원사업에 집중돼 있었다. 당시엔 박근혜 후보의 ‘아빠의 달’(육아휴직) 도입과 문재인 후보의 ‘아버지 휴가’(2주) 제도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 5년 사이 양성평등 보육 지원에 대한 필요성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선택한 남성 근로자는 7616명으로 전년 대비 56%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남성 육아 확대 공약이 자연스럽게 성평등 이슈로 연계돼 여성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하는 ‘일거양득’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정부의 정책적 강제’를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노충래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 정책에 기업이 적극 응해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육아휴직 사용 시 기업 내 불이익이나 차가운 시선 등은 정책 공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광재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도 “시장에 어떤 당근을 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실현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며 “결국 디테일을 채워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