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겨울과 봄이 오락가락한다. 이른 봄엔 추위가 더 차갑게 마련이다. 추억 속의 입학식은 꽁꽁 겨울 풍경이었다. 넓게만 보이던 운동장도, 앞으로나란히를 반복하던 두 팔도, 훌쩍거리던 코끝도 모두 얼어 있었다. 손수건을 옷핀에 꿰어 가슴에 매단 새내기들은 며칠씩 앞으로나란히와 차려를 배우면서 비로소 어린 학생이 되어 갔다.
달력은 3월이라지만 심리적으로 겨울은 물러가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겨울도 한결 푸근해졌다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간(間)절기는 유난히 더 길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강원도의 산들은 종종 흰 모자를 쓸 것이며, 사람들은 당분간 겨울내복을 벗지 못할 것이다.
겨울과 봄이 가끔 엎치락뒤치락할 테지만, 결국 봄은 이길 것이다. 이미 부지런한 풀들은 겨울몸살을 견뎌냈다. 성급한 봄볕은 여전히 일교차로 몸살을 앓지만, 어느새 계절은 입춘의 경계를 넘어 우수의 강을 건넜으며, 마침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에 다다랐다. 꽃샘추위와 잎샘추위란 고개를 넘어서면서, 마음보다 느릿느릿 봄이 다가올 것이다.
봄꽃 소식 역시 소문부터 찾아올 듯하다. 기상청은 중계방송하듯 봄소식의 전령인 개나리의 개화일정을 전할 것이다. 개나리는 서귀포에서 맨 처음 멍울을 터뜨린 후 등고선을 그리며 북상할 것이고, 3월 중순을 넘어서면 서울에서도 활짝 핀 개나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개나리뿐이랴! 생강나무, 산수유, 수선화까지 노오란 봄꽃들은 차례로 반가운 얼굴을 내밀 것이 자명하다.
이미 유명세를 탄 봄꽃의 대표선수들보다 더 일찍 피어나는 들꽃들이 많이 있다. 어느새 얼음 곁에서 핀 꽃들은 아우성이 한창이다. 한결같이 여리고, 작고, 낮게 겨울 낙엽 사이에서 피어나는 들꽃들은 언뜻언뜻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가장 담대하고 당당한 봄꽃이다. 겨우 아기 손 한 뼘 크기의 풀에서 피어난 어린 꽃들은 진정한 봄의 전령이라 불릴 만하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최전선 위에 핀 꽃들이기 때문이다.
복수(福壽)초꽃, 바람꽃, 노루귀, 봄까지꽃 등이 주인공이다. 가장 일찍 서두른 복수초꽃은 차가운 얼음 틈에서 핀다고 해 ‘얼음새꽃’이라고도 불린다. 가장 흔한 큰개불알꽃은 이름이 민망해 동호인들 사이에서 ‘봄까지꽃’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바람꽃의 종류는 얼마나 흔한지 모양새에 따라, 발견된 곳에 따라 그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들바람, 꿩의바람, 세바람, 변산바람, 너도바람, 나도바람, 심지어 ‘그냥바람’ 꽃도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봄의 기운은 분주하게 걸음과 자취를 옮겨 오고 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시 65:10) 모든 봄의 새싹은 봄빛 순례의 출발점이 되었다.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저마다 우여곡절이다. 봄이 다가오는 시절의 문턱에서 우리 시대가 기다리는 진정한 봄소식은 과연 무엇일까? 2017년 새봄은 세상의 아픔과 연대하고 이웃의 고난과 공감하면서, 따듯한 정의와 더 낮은 민주주의를 약속하며 찾아오면 좋겠다. 한겨울 내내 거리와 광장을 지폈던 흔들거리던 촛불처럼 우리 시대의 시름을 견뎌내고, 살금살금 피어나는 작은 꽃들과 함께 성큼 자라나 우뚝 서는 그런 봄이면 좋겠다.
봄이 오는 길목에 ‘하나님의 달력’ 사순절이 먼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신비하다. 이런 기다림을 꿈꾸는 사순절기는 그 존재만으로도 미덥고 거룩하다. 다만 억지 경건과 무리한 절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친밀하신 눈길과 더불어 새로움을 바라‘봄’이며, 따듯한 평화를 살아‘봄’을 연출하면 더욱 살맛 날 것이다. 그런 부활의 봄소식!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송병구] 겨울을 넘어 봄으로 봄으로
입력 2017-03-02 17:20